
쇼와유신 사상은 천황에 대한 충성이라는 전통사상과 함께 ,현대적 혁명 사상을 포함했던 관계로, 일본 일부 보수파는 이를 '변종'
공산주의로 간주하기도 했다.
32년 5월 15일 사건 이후, 후쿠오카의 니시니시 지는 정치와 혁명을 입에 담는 장교들이 1917년의 러시아와 유사한 혁명적 상황을 연출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34년에 일본 의원 기이치 마스무라는 청년장교들이 모든 재산을 천황 폐하에게 반환해야 한다는 매력적인 주장을 앞세우고, 실제로는 공산주의의 대의를 주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35년에 오카다 총리도, 육군내에서 유포된 급진 우파의 유인물을 검토하면, 그것이 공산주의자의 작품으로 의심된다고 말했다.
36년 2월 26일 사건 이후, 1사단의 참모장은 반란군을 외세의 지원을 받는 극좌파로 묘사했다.
심지어, 유명한 소련 스파이, 리하르트 조르게는 당시 일본에 특파원 신분으로 체류중이었는데, 동료 기자들에게 2월 26일 반란군은 일본 공산당에 연계되어 있다고 말했다. 조르게는 천황이 다스리는 공산주의 일본의 가능성도 배제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체포된 일부 반란군은 일기를 통해서, 자신들이 공산주의자 대접을 받는다고 불평을 했다.
태평양전쟁의 말기에, 고노에 후미마로는 천황에게, 청년장교들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국제 공산주의 운동과 관련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전범재판에서 도조 히데키는 청년장교들을 급진 혁명가들로 묘사했다.
출처-
Shillony, Ben-Ami. Revolt in Japan :the young officers and the February 26, 1936 incident. Princeton University Press , 1973, 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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