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와라 간지의 군생활 말년 보직은?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위키백과 같은 사전은 이시와라 간지의 주요 경력을 연대기 순으로 제대로 정리하지 않고, 중요한 경력만을 다룰 뿐이다.

이에 비하면, http://www.generals.dk 는 이시와라의 상세한 군경력을 연대기로 알려준다.

Service

1928-10-10 1932-08-08 Senior Strategy Officer, Kwantung Army
1931-10-05 1932-08-08 Chief of Strategy Branch, Kwantung Army
1932-08-08 1932-09-XX Attached to the General Staff
1932-09-XX 1933-08-XX Attached to the Ministry of Foreign Affairs
1933-08-XX 1935-08-01 Commanding Officer 4th Infantry Regiment
1935-08-01 1936-06-05 Chief od 2nd Section (Manoeuvres), 1st Section, General Staff
1936-06-11 1937-03-01 Chief of 2nd Section (War Plans), 1st Section, General Staff
1937-01-07 1937-03-01 Acting Head of 1st Section, General Staff
1937-03-01 1937-09-28 Head of 1st Section, General Staff
1937-09-27 1938-12-05 Deputy Chief of Staff, Kwantung Army
1938-12-05 1939-08-01 Commandant of Maizuru Fortress
1939-08-01 1939-08-30 Attached to 16th Depot Division
1939-08-30 1941-03-01 General Officer Commanding 16th Division
1941-03-31 Retired

1931년 관동군 참모장교로 근무하면서, 만주사변을 주도했던 이시와라 간지는

32년 본국에 귀국후에도, 

참모본부의 2국장, 1국장을 거치면서, 육군 중앙의 실세가 되었다. 

이시와라의 관운은 37년 중일전쟁 발발과 함께 추락한다. 그는 전쟁의 확대를 반대하다가 육군 중앙으로부터 멀어졌다. 

37년 관동군 부-참모장으로 좌천당했다. 문제는 육사 교관 시절부터 관계가 험악했던 도조 히데키가 관동군 참모장이었다는 점이었다.  도조의 군인 철학은 군기 확립이었고, 특히 이시와라 간지 같은 하극상의 표본을 "면도날"? 도조가 관용할 리가 없었다. 

(도조 히데키와 이시와라 간지의 험악한 관계를 고려하면, 두 사람을 육군 통제파의 주축으로 분류하는 것이 부자연스럽다.)

관동군 부참모장 이후의 이시와라의 보직은 38년 12월 마이츠루 항구 요새 사령관.  (헨리 키신저에게 캘리포니아 해안경비를 맡기는 것과 유사한가? ㅠㅠ)

39년 8월, 제16 보급사단 배속 장교

39년 8월 30일- 41년 3월 16사단의 일반 장교

41년 3월 31일 -전역

일본 육군이 배출한 최고의 전략가치고는 이시와라의 말년은 비참했다. 

전쟁전 일본 육군의 인사에는,

그래셤의 법칙이 작동했던 것인가? ㅠㅠ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다!



덧글

  • the3rdmoon 2019/02/10 01:37 # 답글

    마이츠루 항구 요새 사령관. 당시는 연대급이었던 모양입니다. https://ja.m.wikipedia.org/wiki/舞鶴要塞
  • 파리13구 2019/02/10 04:28 #

    감사합니다.

    수정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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