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뮤얼 헌팅턴,"일본군과 독일군의 차이는?"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일반적인 현대 직업군인의 시각에서 전쟁은 원론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하며, 국책의 마지막 수단으로 간주된다. 

이와는 다르게, 일본의 전통 무사는 폭력을 찬양하는 경향을 가졌고, 전쟁을 그 자체의 목적으로 숭배했다. 일본 육군대신은 "전쟁은 창조의 아버지이며, 문화의 어머니이다. 국가들 간의 패권 경쟁은 적에 대한 개인의 투쟁과 같다. 이러한 충동 속에서 생명과 문화 창조의 탄생과 발전이 진행된다."라 선언했다. 

장군들이 이러한 전쟁 철학을 가진 것을 고려하면, 특정 상황에서 일본군이 국가 목표 달성 수단으로 전쟁을 선호한다는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특히 육군 지도자들은 호전적이었다. 반면 해군 제독들은 정치에서의 역할이 더 작았고, 더 보수적이었다. 

일본군은 청일전쟁을 원했고, 그들은 전쟁 말기에 요동반도의 탈취를 주장했다. 그들은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중국에 대한 강경 정책을 선호했다. 그들은 종전 이후, 시베리아에서의 일본 영향력 확대를 기도했다. 그들은 1928년에 만주군벌 장작림을 폭살했으며, 1931년에 만주사변을 도발했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1937년에 중일전쟁을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육군 지도자들은 1941년 12월에 영국과 미국의 아시아 영토에 대한 공격을 지지하게 되었다. 

전쟁 전에 일본의 정치화된 군 지도자들이 침략을 끊임없이 지지한 것은 직업화된 독일 장군들이 정부의 군사적 모험주의에 끊임없이 경고한 것과 대조적이다. 독일에서 군부가 국제연맹 탈퇴에 반대했고, 베르사유 조약을 위반하는 재무장에 희의적이었던 반면, 일본 군부는 탈퇴를 지지했고, 런던 해군조약을 맹비난했다. 일본 장교단 내부의 가장 급진 세력은 일본의 동아시아 지배를 정당화하는 철학을 주장하는데 매우 적극적이었다.

출처-

Samuel P. Huntington, The Soldier and the State: The Theory and Politics of Civil–Military Relations , Belknap Press, 1981. 129-130. 

- 19세기말에 일본군은 독일 교관 메켈 소좌로부터 무엇을 배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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