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총리 암살범에 대한 육군,해군대신의 입장은? Le m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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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미 미네오- 일본 해군대신

1932년 전반은 일련의 정치 암살 사건들의 연속이었다. 일부 청년장교들과 극우단체 혈명단이 정치 테러를 주도했다.

1932년 2월 9일, 혈맹단은 전 일본은행 총재 준노스케 이노우에를 총으로 암살했다.

3월 5일, 혈맹단은 재벌그룹 미츠이의 총수 단 타쿠마를 암살했다.

1932년 5월 15일,
5·15 사건(五・一五事件) 은 1932년 5월 15일에 일어난 일본제국 해군 내 극우 청년 장교를 중심으로 한 반란 사건이다. 무장한 일본 해군의 청년 장교들이 수상 관저에 난입해, 당시 호헌 운동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누카이 쓰요시(犬養毅) 수상을 암살하였다. - 해군 청년 장교 10명과 육군 사관생도 11명 그리고 혈맹단원으로 구성된 자들이 암살을 자행했다. 
오후 5시 30분, 해군 중위 미카미 다쿠가 이끄는 해군장교 4명과 육사 생도 5명이 총리관저에 난입했다.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는 이들과의 대화를 시도하다, 해군 소위 구로이와 이사무에게 암살당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자신이 몸을 담은 내각의 수반을 죽인 암살범에 대한 일본 육군대신과 해군대신의 입장이었다.

해군대신 오스미 미네오 에 따르면, 

"무엇때문에 이 순수한 마음을 가진 청년들이 이런 실수를 범했는지를 고려할 때, 매우 심각한 반성이 필요" 하다는 것이었다.

오스미의 동료장관인 육군대신 아라키 사다오는 1932년의 암살에 대해, "명성이나 개인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그들은 역도도 아니었다. 그들은 일본의 이익을 위한다는 진지한 마음을 가지고 이를 실천한 것에 불과하다."

비록 암살을 공개적으로 두둔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오스미와 아라키가 정치 암살을 사주한 것은 아니었고, 군의 정치참여를 주장한 것은 아니었다. 


참고-
Crowley, James, Japan’s Quest for Autonomy: National Security and Foreign Policy, 1930-1938,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6. 252.



덧글

  • 2019/02/06 11:40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9/02/06 21:1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20/07/09 08:26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20/07/09 08:33 #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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