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일본 육군이 내각을 끝장내는 방법은?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전쟁전 일본의 육군은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정부를 타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졌다. 

1940년 5월, 가짜전쟁을 끝내기로 한 독일이 서유럽 침략을 시작했을 때, 일본 총리는 요나이 미쓰마사 였다. 그는 외무장관 아리타 하치로와 더불어, 독일과의 동맹에 반대했다.

서유럽의 전쟁에서의 독일군의 파죽지세와 네덜란드,벨기에,프랑스가 연달아 항복하자, 일본 육군은 절호의 기회를 포착했다. 네덜란드,프랑스,영국이 위기에 몰리자, 일본은 그들의 아시아 식민지를 차지할 궁리에 몰입했다. 이제 일본의 날이 밝게 될 예정이었다.

일본 육군은 독일이라는 시대적 대세와의 동맹에 반대하는 요나이에 만족할 수 없었다. 1940년 7월초, 덩케르크 철수작전이 실행된 지 몇 주에, 일본 육군대신 하타 슌로쿠가 자신이 봉사하는 정부 붕괴를 위한 행동을 시작했다. 

우선, 하타는 육군계의 원로 데라우치와 스기야마를 만났고, 그들의 지지를 얻었다. 다음으로, 그는 총리와 면담했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했다.

3일차에, 그는  육군성의 실세인 군무국장 무토 아키라를 내각 비서실장에게 보내서, 육군의 요구를 전달했다. 

7일차에, 그는 문서를 통해서 총리에게, 국내에서의 새로운 구조와 새로운 외교정책을 주장하는 육군의 "조언"을 전달했다. 하타는 군사적 사회주의 military socialism 와 독일과의 동맹을 요구했다. 총리가 자신은 육군대신과 생각이 다르다고 답했다. 

요나이 총리는 하타의 사임을 요구했고, 육군에게 새로운 육군대신 추천을 요청했다. 하타는 즉시 사임했고, 그 날 오후 육군의 3인방이 만났다. 3인방은 육군대신,육군 참모총장,교육총감이었고, 그들에게 신임 육군대신 결정 권한이 있었다.

그 날 저녁에, 하타가 총리에게, 상황적인 관점에서, 육군은 육군대신에 적합한 장군을 찾을 수 없었다고 통보했다. 

육군대신을 찾을 수 없게 된 요나이 내각은 붕괴되었고, 결국 요나이는 천황에게 사임을 표명했다. 

천황의 측근들이 다음 총리로 고노에 후미마로를 추천했고, 천황의 승인을 받은 고노에가 육군 3인방에게 신임 육군대신 추천을 요청했다. 그래서 결정된 자가 바로 도조 히데키였다. 

그리고 도조가 육군대신인 고노에 내각이 처음부터 강하게 추진한 것이 바로 독일과의 동맹이었다. 


참고-

Hugh Byas. Government by Assassination. New York: Alfred A. Knopf, 1942. 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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