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2·26 사건(二・二六事件)은 1936년 2월 26일 일본 육군의 제1사단 소속의 황도파 청년장교들이 1483명의 병력을 이끌고 일으킨 반란사건이다.
일본 육군에서의 1사단의 위상은 다음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29년 제1사단 지휘부 -사단장 마자키 진자부로, 1연대장 도조 히데키, 제3연대장 나가타 데쓰잔)
반란군은 국책의 배신자들을 처단한 이유로 다음을 주장했다. 그 배신자들은 원로 정치인, 금융자본가, 황실의 관리, 육군의 특정 파벌이었다.
궐기 취의서
그들은 천황의 통수권을 침해했다. 무엇보다도, 런던 해군조약 체결에서, 육군 교육총감 (마자키 진자부로) 제거에서 그랬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1931년 3월의 쿠데타 모의 (우가키를 총리로 추대하려 했다)로 통수권을 훔치려 모략했고, 그들은 반역적 입장을 가진 불충스러운 교수들(미노베의 천황기관설)과 손을 잡았다. 이것들은 그들의 가장 주목할만한 만행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
최근에, 많은 개인들이 인민의 일반적인 복지와 번영과는 무관하게 치부에만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경우가 많아졌다. 그 결과로 제국의 영광이 손상되었고, 그 결과 일본인들이 고통을 겪게 되었다.
이제 일본은 심각한 내우외환에 직면하게 되었다. 따라서 국가를 보호하기 위해서 이번 위기에 책임있는 자들을 처단하는 적절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만주로 떠나기 앞서, 우리 1사단은 궐기했다. 국내의 사악한 조건에 대한 우리의 심각한 근심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이 천황 폐하의 신민으로서의 우리의 의무라 믿으며, 이를 위해서 천황 주위의 배신자들과 악인들을 처단하고자 하며, 그들의 근거지를 파괴할 것이다.
우리는 신의 신성한 땅의 자식들이며, 성심성의를 다하여 행동할 것이다.
황실 조상들의 정신이 우리를 도와서, 국가를 구하고자하는 우리의 노력을 성공하게 만들기를 비는 바이다.
참고-
Crowley, James, Japan’s Quest for Autonomy: National Security and Foreign Policy, 1930-1938,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6. 245-246.
반란군은 다음을 요구했다.
-반란 세력은 정치,사회 개혁, 통제파 지도자들의 체포, 황도파들을 핵심 요직에 임명할 것, 붉은 군대를 압박하기 위해서, 아라키 장군을 관동군 사령관에 임명할 것,
Butow, Robert J. C., Tojo and the coming of the war,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1. 65.
-그들은 황도파 잠정 내각을 수립할 예정이었다.
가토 요코,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만몽 권익이란 무엇이었나, 어문학사,2012. 221.
- 청년장교들은 조슈 출신의 육군 지배에 저항했고, 그들은 주로 사가 혹은 오이타 현 출신이었다. 그들은 독일과의 동맹을 지지했고, 러시아와의 결전을 주장했다. 그들은 천황이 지배하는 군사정부의 수립을 주장했다.
S. C. M. Paine’s The Wars for Asia, 1911–1949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2), 43.
- "미나미 대장, 우가키 조선총독, 고이소 중장, 다케가와 중장은 군통수권 파괴의 원흉으로 체포할 것"
호사카 마사야스,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 페이퍼로드, 2012. 162.
덧글
그런데, 그 결과라는 게(..) 청년의 혈기는 양날의 검인듯 합니다..
ps.1 한국에선 2.26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류철균(필명 : 이인화)의 불쏘시개 '인간의 길' 3부작(무라나카 다카지를 무라나카 코우지로 기본인명조차 틀리는..)에서 드러났듯 2.26을 초인 박정희 강림의 전초 신화격으로 미화시켜 보는 경향이 있는듯 합니다.
ps.2 거사 성공했으면 역대 조선총독이나 미래 조선총독은 모조리 사형감이 될 뻔. (불쌍한 사이토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