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 5월 15일 암살사건과 마자키 진자부로?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아라키 사다오가 육군대신에 재직 중일 동안인 1931년 말- 1934년 1월 동안은, 청년장교 운동의 전성기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아라키가 이 운동에 동정적이었음은 물론이고, 육군 참모 부총장 마자키 진자부로 같은 황도파 세력이 일본 육군의 주요 요직을 장악한 상황이었다. (청년장교 운동에 대해서 황도파가 동정적이었다면, 도조 히데키의 통제파는 군기를 강조하고, 하극상을 처벌하면서 반대입장을 보였다.)

1932년 5월 15일 사건이 발생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5·15 사건(五・一五事件) 은 1932년 5월 15일에 일어난 일본제국 해군 내 극우 청년 장교를 중심으로 한 반란 사건이다. 무장한 일본 해군의 청년 장교들이 수상 관저에 난입해, 당시 호헌 운동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이누카이 쓰요시(犬養毅) 수상을 암살하였다.

암살이 있던 바로 그날 밤, 육군 참모 부총장이자 황도파의 핵심인 마자키 진자부로가 육군성을 방문했다. 

육군성에, 청년장교 운동 지지 장교들이 육군대신 아라키 사다오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마자키가 그들을 맞았다. 그들은 육군대신에게 이번 거사에 동참해 달라고 요구했다. "우리 동지들이 전국적으로 준비가 끝났다. 그들은 행동을 원하고, 우리는 오늘 일어날 것이다."

그러자 마자키가 "육군대신은 봉기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아라키 장군의 입장이며, 나도 마찬가지이다."라 답했다.

마자키는 그들에게 냉정을 되찾으라고 명했다. 그는 그들에게, 1877년 사이고 다카모리의 사쓰마 반란 때도 온 나라가 반군을 지지해 줄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고 설득했다. "당대의 가장 강력한 군인, 위대한 사이고 다카모리도 실패했다. 그런데, 아라키와 마자키가 성공할 것 같은가?"


Hugh Byas. Government by Assassination. New York: Alfred A. Knopf, 194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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