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쇼와유신과 청년장교 운동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2-26 사건, 1936년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

─카를 마르크스,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

Shōwa Restoration

쇼와유신은 매우 모호하게 정의된 정치 구호였다. 쇼와유신은 1936년 2-26 사건에서 청년장교운동의 반란의 구호였다. 유신을 주장하는 이데올로기의 중심에는 1868년 메이지 유신, 즉 메이지 천황에게 일본인민에 대한 주권이라는 정당한 지위를 회복시킨 사건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거나 혹은 경로를 이탈했다는 것이었다.  미완성 혹은 이탈은 천황의 측근들 때문이었다. 천황의 측근들이 천황의 힘을 강탈하고 있기 때문에, 천황 권력의 회복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유신 주장자들은 이들 측근들이 천황을 압박, 자신들의 이익에만 맞는 정책들을 강요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 정책들은 일본 인민이 아닌 측근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쇼와유신 주장자들이 믿었다. 

메이지 유신을 계속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믿음은 1870년대 부터 제기되었다. 특히 사이고 다카모리의 사쓰마 반란의 시대에 그랬고, 다이쇼 시대에도 간혹 제기되었다. 1920년대 말에 급진 우파들은 "쇼와유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일본에서의 서양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를 비판했고, 쇼와 천황 아래에서의 일본 민족의 통일을 주장했다. 

청년장교 운동은 쇼와 유신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들이었다. 1920년대 도쿄의 육사에서 시작된, 청년장교 운동은 일본의 정치적,사회적 재건을 추구했다. (당시에 마자키 진자부로가 육사교장으로 있었다. 마자키는 황도파의 핵심이 될 사람이었다. 그는 특히 일본 육사 교장 시절에는 존황절대주의(尊皇絶對主義)의 육성에 힘쓰며 후에 2·26 사건의 주모자 안도 데루조(安藤 輝三), 이소베 아사이치(磯部 浅一) 등을 배출해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그들에게 큰 영향을 준 것은 극우파 사상가 기타 잇키 Kita Ikki 였다. 기타 잇키의 <<국가개조를 위한 기본 계획 Basic Plan for National Reorganization>>이 그들의 영감의 원천이었다. 기타의 계획에는 개인적인 것에 대한 구속, 공동의 부, 재산의 제한적인 국유화 등이 포함되었다. 청년장교들에 따르면, 천황은 쿠데타 이후에 '인민의 천황'으로 자신의 지위를 주장할 것이며, 개혁을 추진할 예정이었다. 이 계획 속에서 청년 장교들은 일본에서 특권 계급을 청소하여 ,사회 불평등을 완화시키려 했다. 특권 계급에는 정당 정치인, 자본가, 고위 군장성들이 포함되었다. 계획을 실천하면서, 그들은 자신을 막부 말기의 하급 무사의 계승자로 동일시했다. 1860년대에 애국적 하층 사무라이들이 도쿠가와 막부를 전복시켰던 것처럼, 청년장교들은 황실 주위의 부패한 측근들을 숙청하려 했다. 기타 잇키가 청년장교들에게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지만, 1936년 2월의 그들의 행동 계획을 기타가 제공한 것은 아니었다. 

1936년 2월 26일 아침, 청년장교 운동의 지지자들이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도쿄 중심부를 점령하여 쇼와유신을 실행하려 했다. 그들은 천황이 자신의 계획을 지지할 것이며, 군 개혁가들이 개혁을 실천할 것이라 믿었다. 정부의 주요 시설을 점령하고, 정부의 주요 인사들에게 암살단을 보낸 후에, 운동의 지도자들이 군 지도자들에게 "봉기 선언문"을 보냈다. 선언문에서, 청년장교들은 육군대신에게 쇼와유신을 시작할 것을 요구했지만, 천황 주위의 악마적 측근들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 이외의 구체적 행동을 제시하지 못했다.

하지만, 히로히토는 반란도 쇼와유신 요구도 지지하지 않았다. 천황은 청년장교들은 "반역의 무리"로 규정했고, 반란 진압을 명령했다. 이렇게 쇼와유신의 꿈은 쇼와천황 본인에 의해서 좌절되었다.


출처-

Japan at War: An Encyclopedia. Contributors: Louis G. Perez - Editor. Publisher: ABC-Clio. Place of publication: Santa Barbara, CA. Publication year: 2013.  391-392. 



덧글

  • 진보만세 2019/02/03 12:09 # 답글

    일견, 일본판 '영구혁명론' 같기도. 2.26수습 당시의 전광석화 진압이야말로 히로히토의 본모습이라는 말도 많죠..

    예전 2.26을 다룬 다큐에서 40년 넘게 청상과부로 지내다 방첩부대의 남편 안도 대위(2.26의 직전까지 거사 반대)와 기타 잇키와의 통화 도청 녹음을 듣는 부인의 표정에서 참으로 이 사건은 관계없던 많은 이들의 삶을 파괴했구나하는 느낌에 착잡했다는..

    http://www.youtube.com/watch?v=cgntQbjo4F4&t=1089s "2.26 사건 비록 - 교신을 도청하라" 1979년, 14:58 ~18:03이 안도-기타 교신과 부인 증언 모습)
  • 파리13구 2019/02/03 11:51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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