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국가전복 세력을 다루는 일본 사법부의 방법은?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30년대 일본의 극우 테러세력을 쇼와 사법당국은 어떻게 처벌했을까? 

1931년 10월 사건이란 사쿠라 회의 급진 멤버인 하시모토 긴고로 중좌 등 참모본부의 일부 중견 장교들과 민간의 오카와 슈메이 등이 군사 쿠데타를 계획한 것이다.

일본 군당국은 음모를 사전에 적발, 전쟁전 일본 역사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 될 수 있었던 쿠데타를 막았다. 기자들을 동반한 일본군 헌병대가 술집을 포위하고, 가담자들을 체포했다. 

하시모코 긴고로를 중심으로 한 사쿠라 회는 기관총, 해군 폭격기와 독가스를 동원, 일본의 민간,군 지도자들을 청소할 계획이었다. 유혈극 이후, 조직은 아라키 사다오 장군을 총리로 임명할 예정이었다. 아라키는 육군의 급진 개혁파인 황도파의 수장이었고, 그는 쇼와유신을 단행할 계획이었다. 쿠데타 세력은 국내의 사회 개혁과 해외에서의 끊임없는 제국 확장 사업을 전개하고자 했다.

주요 가담자들을 검거한 후에, 육군 헌병대장은 그들을 "무사도 정신"에 따라 대우할 것이라 선언했다. 그 결과, 국가전복 음모 가담자들은 고급 여관에서 10일 간의 구류라는 처벌을 받았다. 그들에게 술과 게이샤가 제공되었다. 그들 중 몇 사람은 이후 석방되었고, 다른 가담자들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군에 복귀하여 군생활을 이어갔다.


출처-

Danny ORBACH, Pure Spirits: Imperial Japanese Justice and Right-Wing Terrorists, 1878–1936, Asian Studies, 6(2), 2018. 


"이게 나라냐!!" 

국가를 사랑하는 순수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마음껏 테러를 해도 처벌하지 않는다는 사법 정책을 가진 나라가 30년대 일본이었는가? 

그 결과 30년대 일본 사회에 어떤 일들이 발생했을까?



덧글

  • 진보만세 2019/02/01 23:38 # 답글

    문득 맥주 홀 폭동에 대한 독일 정보기관 및 군의 대응은 어떤 것이었는가 일본의 사례와 비교분석해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반면 5.16 전후 장면 정권 첩보기관의 쿠데타에 대한 대응은 으음.. 일단 수장격인 이후락부터가 막장형 인물인지라, 비교자체가(..)
  • 파리13구 2019/02/02 04:33 #

    일본이 독일로부터 배운 것이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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