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도조 히데키, 독소불가침 조약에 대해서.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39년 초, 독일과의 동맹이 일본 국내의 정치쟁점이던 상황에서, 같은 해 8월의 독소불가침 조약은 그야말로 날벼락이었다. 

조약의 충격으로 8월 30일, 히라누마 기이치로 내각이 사퇴했다.

당시 도조 히데키는 비교적 한직이라 할 수 있는 항공 총감 및 항공본부장이었다.

독소불가침 조약에 대해서 도조는 이렇게 평가했다고 한다.

독일 - 소련 불가침조약을 알았을 때 격노하면서 히틀러를 매도했다. 도의도 없고 신의도 없는 놈이라는 둥, 저 따위 하사관 출신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둥, 내가 아는 독일은 이런 나라가 아니라는 둥, 도조는 화를 삭이지 못하고 투덜댔다. 하지만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그의 주위에 있던 측근뿐이었다. 


호사카 마사야스,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 페이퍼로드, 2012. 214.



덧글

  • 까마귀옹 2019/01/25 11:40 # 답글

    근데 2년 뒤에 미국 싸대기 때릴 나라에서 나올 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 파리13구 2019/01/25 13:31 #

    ^^
  • eggry 2019/01/26 20:45 # 답글

    손발 맞춰도 힘들 판에 손발이 안 맞는 동맹
  • 파리13구 2019/01/27 00:59 #

    ^^
  • wolf 2019/01/27 02:02 # 삭제 답글

    공산당을 그리 싫어하면서도 정작 반공주의 국가인 영국, 미국, 중국의 국민당 등에게 전쟁을 거는 모순된 행동하다니
    정말 머리와 팔다리가 따로논다 그 자체로군요
  • 파리13구 2019/01/27 02:04 #

    반공을 국시로 했다면 북방의 소련과 전쟁을 했어야 했지만,

    결국 소련과는 중립을 유지했고, 영국,미국 그리고 반공투사 장개석과 싸우고,

    중국은 공산화되었습니다.
  • 롤ㄹ 2019/04/07 10:06 # 삭제 답글

    불가침 조약 맺고 뒤통수 치더니 군인.민간인 포함 2000만명 넘는 희생을 가져온 것이 소련이였됴.. 이 때문에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 서방 측 판사들은 사형수 중 현역 군인들(공군 원수 헤르만 괴링.국방군 최고사령부 총장으로 육군 원수 빌헬름 카이텔. 그의 부하이자 육군 상급대장인 알프레트 요들)은 군대 군법회의 표준을 따라서 총살시키고 나머지는 교수형으로 시키려고 했으나 소련 수석 판사로 파견된 이오나 니키첸코가 피고인 중에서 군인신분을 가진 자들에 대한 총살형에 대해 길길이 날뛰면서 반대했고 결국 군인들도 나머지들과 마찬가지로 전원 교수형으로 하게 되었고 괴링이 자살하게 된 원인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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