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에 아키라,일본 국가전략의 갈등하는 두가지 원칙이란?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20세기 일본 국가전략의 딜레마? 서양과 협력할 것인가?, 대립할 것인가? 

이리에 아키라에 따르면, 전쟁전 일본 역사의 역동성의 뿌리에는 자신의 국익의 본질에 대한 두개의 갈등하는 입장이 있었다. 그 갈등이란 바로, '서양과 협력할 것인가', 아니면 '서양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라는 주장의 대립이었다.

적어도 1910년까지 일본은 신중하게 행동했고, 현실주의적 방식으로 서양 제국주의 공동체의 존경받는 일원으로 부상했다. 메이지 시대의 지도자들이 추진했던 이 정책은, 독립 세력으로의 일본이란 존재는 가능한 많은 서양국가들과의 계속되는 협력과 경제 교류에 달려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정책의 '눈부신' 성공에도 불구하고, 아시아에 대한 서양의 완벽한 지배에 대한 공포가 사라지지 않았다. 실제로, 일본의 힘이 계속 강해지면, 서양이 결국 평등에 대한 일본의 요구를 거절할 것이란 주장이 설득력을 가졌다. 몇몇 일본의 영향력있는 사상가들은 일본의 지도 하에 전체 아시아인들이 연대하는 것이 일본에게 놓인 불가피한 선택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유럽에서의 제1차세계대전의 발발은 일본 정책의 기존 준거틀인 서양과의 협력주의에 타격을 주었다. 그 결과, 일본의 국익에 대한 두 개의 주장이 전시의 일본 외교정책에 반영되었다. 

전쟁 동안, 한편으로 일본은 제국주의 외교라는 기존의 틀 안에서 계속 행동했다. 이는 서양 세력과 가능한 협력하자는 것이었다. 영국,프랑스,러시아,미국과 협정을 통해서 일본은 극동에서의 자신의 권익을 명시적 혹은 묵시적으로 인정받으려 했다. 심지어 1915년의 21개조 요구안 조차도, 그 주요 목적은 남만주와 내몽골 동부에서 일본의 기존 권리를 영구적인 것으로 만드는데 있었고, 그 과정에서 도쿄 정부는 열강에게, 자신이 게임의 법칙에 따라 행동하고 있고, 중국에서의 서양세력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을 것임을 납득시키려 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일본이 서양 제국주의와의 협력이라는 원칙에 결정적으로 일탈해서 행동한 부분이 있었다. 위안스카이(원세개)와 볼셰비키에 대한 일본의 정책은 다른 세력과 다르게 독자적으로 행동하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냈고, 사실상 일본은 그들의 곤경에서 이익을 보려했고, 중국,몽골 그리고 시베리아 동부에서 패권을 확립하려 했다. 이러한 조치들은 특정한 믿음을 반영했고, 그것을 주장한 것은 주로 군부였다. 즉 일본은 전후의 서양의 아시아 지배 부활을 막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 일본인,중국인 그리고 비-볼셰비키 러시아인들이 긴밀히 협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참고-

Akira Iriye, After imperialism: the search for a new order in the Far East, 1921-1931,Imprint Pubns (November 1, 1990), 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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