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리펜 계획에 대한 도조 히데키의 해석은?"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22년 11월, 도조 히데키는 독일 근무를 마치고, 귀국하여 육군대학교의 병학교관이 되었다. 그는 육군대학의 전쟁사 담담 교관이 되었다.

그와 당시 육군대학 학생들의 관심사는 최근의 전쟁, 즉 제1차세계대전이었다. 도조의 슐리펜 계획 해석이 흥미롭다.

1914년 독일의 슐리펜 계획은 전술적인 현란함에도 불구하고, 외교적으로 재앙임이 분명했다. 슐리펜 계획의 재앙적 효과는 3개국의 중립(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을 침해하는 것을 기정사실로 만들었고, 이에 대한 조약상의 의무를 가지고 있었던 영국을 독일의 적으로 만들었다. 뿐만아니라 이 계획은 미래의 전쟁에서 프랑스,러시아와 동시에 싸워야 하며, 발칸반도에서 전쟁을 국지전이 아니라 , 자동적으로 국제전으로 만드는 군사전략이었다. 작전에 따르면, 프랑스에 대한 즉각적인 공격이 필요했고, 러시아의 동원령에 독일도 신속하게 동원령을 선포하는 것으로 대응해야만 했다. 즉, 슐리펜 작전에 따르면, 만약 독일이 프랑스를 격파하지 않으면, 독일이 러시아와 일전을 치를 수 없었다. 따라서, 전쟁이 발칸에서 시작된다고 하더라도, 독일은 우선 프랑스를 공격할 수 밖에 없었다. 이 작전이 처음으로 전쟁을 자동적으로 양면전쟁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후대의 역사가들이 슐리펜 계획의 재앙성에 주목했음에도 불구하고, 1920년대초의 도조는 슐리펜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도조 히데키에 따르면, "독일의 슐리펜 원수의 적 섬멸작전은 최대한의 기동력으로 벨기에를 돌파하여 프랑스군의 약점을 넓게 포위하여 이를 몰아붙여"라고 규정했고, "독일은 전투에서 졌지만, 통수권은 지켜냈으며, 최후까지 정치의 간섭을 허용하지 않았다."라고 자신의 신념을 주장했다.

참고- 

호사카 마사야스, 도조 히데키와 천황의 시대, 페이퍼로드, 2012. 87.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서, 일본군의 일부 선각자들이 이 전쟁을 총력전으로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군대만이 수행할 수 없다는 점을 도조는 인정하지 않았다. 

군의 관점을 사회의 다른 부분, 정치 혹은 외교와 조화시켜야만 한다는 것이 이른바 대전략의 전제라 할 수 있지만,

일본군의 통수권 논리는, 군의 관점에 대해서 다른 세력의 개입을 차단,봉쇄하면서, 

슐리펜의 과거를 일본제국의 미래로 만드는데 공헌? 했다.

슐리펜 계획이 외교관계를 고려하지 않고, 독일의 유럽 제국의 적으로 만들었다면,

전간기 일본군부의 독주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을 국제적인 왕따로 만들었다.    

대전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군의 전략과 외교 등의 전략이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거대한 전략이 만들어 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일본제국의 문제는, 통수권 논리로 인해서 군의 관점을 넘어서는 대전략의 형성을 제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점에 있다. 

슐리펜 계획 같은 빛나는 군사전략은 전투 혹은 전투들에서 승리를 가능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쇄적인 군사전략은 전시경제, 동맹외교, 국내, 국제적 여론전 같은 다른 요인들을 무시하면서, 결국 전투에서는 이기지만, 전쟁에서 지게만들고, 해당 국가를 망국에 이르는 재앙의 씨앗이 되기 마련이다.



덧글

  • 까마귀옹 2019/01/12 17:28 # 답글

    '전쟁은 군대 혼자서 하는게 아니다'

    역사를 보면 이걸 잊어먹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죠.
  • 파리13구 2019/01/12 19:18 #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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