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역사가 이리에 아키라는 1931년 만주사변의 중요성에 대해 다음을 지목했다.
세계 경제 위기와 더불어, 만주사변은 현대사의 전환점이었다. 1931년 이후, 국제연맹의 평화유지 체제가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일본 군국주의는 짧았던 정당 정치의 시대(다이쇼 데모크라시)를 끝장냈고, 중국은 위기와 격변의 길(중일전쟁,국공내전)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의 사건들은 만주 위기의 역사적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왜냐하면 일본이 결국 미국에 등을 돌리게 되었고, 미중 동맹과 싸우게 되었기 때문에, 31년의 만주사변과 41년의 태평양전쟁 발발은 직접적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일본 군국주의가 승리하고, 전체주의 체제가 조직된 것도, 그 뿌리는 1931년의 일본의 국내적,대외적 사건들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의 정책 결정에서의 군부의 위치, 군의 위계체제에서의 하급 장교들의 역할, 야전군의 독립, 육군과 해군의 경쟁, 민간의 극단적 민족주의자들, 이 모든 것이 만주사변과 관련된 것이며, 따라서 이 사건은 역사의 편리한 출발점을 제공한다. 전쟁 전의 일본 역사의 대부분의 일반화가 만주 위기 연구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출처-
James William Morley (ed.), Japan erupts : the London naval conference and the manchurian incident, 1928-1932, New York : Columbia Univ. 1984. 233.
일본의 중국 침략이 없었다면, 중국의 공산화가 가능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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