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일본해군 함대파 가토 간지의 논리는?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가토 간지- 일본 해군 군령부장 (해군 참모총장) -1930년

1930년의 런던 해군 군축 회담은 일본제국의 패망을 향한 문이 열린 사건으로 기억될 수 있다. 회담 관련 논쟁에서, 영미에 대한 비타협적 태도를 주장하고, 일본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회담을 결렬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가토 간지를 수장으로 하는 일본 해군 군령부였다. 

해군 군령부장 가토 간지는 영미 해군에 대해서 일본이 보조함의 70% 지분을 가지는 것은 절대적인 최소한의 요구사항이라고 주장했다. 29년 11월 18일 가토는 하마구치 총리에게, 70%는 절대적 최저 한도이며, 일본 해군에게 사느냐 혹은 죽느냐의 문제라 주장했다. 

런던에서 군축 회담이 난항을 겪고있는 가운데, 가토는 30년 2월 5일, 당시 회담에 참석 중이던 아보 제독에게 전문을 보내 다음을 주장했다.

"만약 그들이 고작 10%를 더 달라는 일본의 요구를 거절해서, 우리가 회담을 깬다면, 일본은 세계의 동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켈로그-브리앙 조약 때문에, 미국은 아마도 장래에 거대한 해군 무장 확장을 하기에는 매우 곤란한 처지에 놓일 것이다. 심지어 그들이 세계 제1의 함대를 만들고, 그들의 함대가 일본의 몇 배에 달한다고 하더라도, 그 효과는 일본과 영국이 손을 잡게 만들 것이고, 미국이 제2의 독일이 되게 만드는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난관들 속에서 우리는 약간의 운좋은 결과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가령, 일본이 자신의 정당한 요구에서 단 한 치의 물러섬도 보이지 않고, 미국이 켈로그 조약 정신을 위반했다고 비난하면서 회담을 결렬시켰다고 치자. 만약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미국의 청교도들과 평화주의자들이 일본의 기질을 인정할 것이다. 그들은 일본과 협력하기를 원할 것이고, 미국 제국주의자들을 억제할 것이다."

출처-

James William Morley (ed.), Japan erupts : the London naval conference and the manchurian incident, 1928-1932, New York : Columbia Univ. 1984. 29.

물론 1930년 런던 해군 군축 조약 논쟁에서 가토 간지는 패했다. 그의 논리는 통하지 않았고, 대신에 조약을 지지했던 해군성의 조약파가 승리했다.

하지만, 가토 간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었다. "전투에서 패한 것이지, 전쟁에서 진 것이 아니다." 30년 런던 조약 이후, 일본 해군 내의 권력투쟁에서 가토 간지의 함대파가 해군성 조약파에 대해 승리를 거두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토 간지로서는 이후에 국제정치학에서 주장하는 이른바 "안보 딜레마"를 결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안보 딜레마란 무엇인가? 혼란한 국제정세 속에서 국가는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서 무장을 늘린다. 하지만 이 행동이 상대방 국가의 의심을 사서 군비경쟁을 유발하거나, 외교적인 강압조치, 군사적 대응을 초래하게 만들 수 있다. 이 경우, 그 국가는 무장의 강화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안보는 더욱 불안해 진다. 더 많은 무기가, 더 많은 불안을 초래한다는 것이 바로 안보 딜레마이다. 

일본 제국의 역사에서, 가토 간지의 함대파의 공과란 무엇인가? 일본을 더욱 안전하게 만들었는가? 아니면, 영미와의 전쟁이란 재앙의 씨앗을 만들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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