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이시와라 간지가 중일전쟁에 반대한 이유? (2)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이시와라 간지와 중일전쟁.

1936년 가을, 마사쿠주 가와베 장군이 베이징 외곽의 여단장에 부임하면서, 참모본부의 작전부를 방문, 이시와라 간지를 만났다. 그에게 이시와라는 중국군과의 어떤 충돌 가능성도 철저하게 피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당시 이시와라 간지는 왜 장개석 세력과의 무력 충돌을 피해야 한다고 믿은 것인가? 그것은 일본에게 임박한 전략적 위협이 되는 것은 소련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본은 소련과의 대결에 모든 힘을 모아야 할 때라는 것이었다. 그는 만약 일본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소련과의 무력 충돌을 준비하고 있다면, 일본은 확실하게 다른 모든 군사적 충돌은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충돌 때문에 일본이 국가의 관심,자원,힘을 다른 데 낭비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특히 일본은 중국과의 전면전은 피해야만 했다. 1)

1935년 이래, 중국 현지 주둔 일본군에 의한 이른바 화북분리공작이 진행 중이었지만, 이시와라는 화북이 일본이 미래 전쟁을 위해 중요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35년 6월, 이시와라는 한 측근에게, “일본은 만주국 안정에 전념해야만 한다. 만약 만주국이 믿을 수 있게 관리된다면, 화북이 그 뒤를 따를 것이다. 귀감의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화북에서 사소한 음모를 벌이고, 몽골이라는 판에 우리의 손을 담그는 것은 어리석다.” 

36년 봄, 그는 화북의 경제 자원적 가치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 국방국가 건설에 화북의 자원이 사활적인지에 대한 의문이었다. 이 의문 해결을 위해서 그는 자신의 참모 장교 중 경제전문가를 만주에 파견, 새로운 조사를 하도록 지시했다. 3)

1) PEATTIE, MARK ROBERT. ISHIWARA KANJI (1889-1949) AND THE JAPANESE ARMY, A Dissertation,Princeton University,1972 ,286.

2) PEATTIE, MARK ROBERT. ISHIWARA KANJI (1889-1949) AND THE JAPANESE ARMY, A Dissertation,Princeton University,1972, 285.

3) PEATTIE, MARK ROBERT. ISHIWARA KANJI (1889-1949) AND THE JAPANESE ARMY, A Dissertation,Princeton University,1972, 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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