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소련군의 증강과 이시와라 간지의 근심?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35년 8월, 이시와라 간지가 일본 육군 참모본부 작전과장에 임명되었다. 그를 후원한 것은 육군 통제파 지도자, 나가타 데쓰잔이었다. 이번 임명을 통해서, 나가타는 일본군의 총력전 대비능력 발전을 기대했다.

35년, 이시와라가 작전과장이 되었을때, 극동에서 일본의 안보를 가장 위협한 것은 소련이었다. 군사력 불균형은 우려할만 했다. 극동의 소련 육군 사단은 1932년 8개에서 1935년 말에 14개로 늘었다. 대조적으로, 아시아 대륙의 일본군 사단은 1932년 6개에서 35년에 5개로 줄었고, 이 중 3개 사단이 만주에 배치되었다. 이러한 일본 육군 전력은 소련 군사력의 단지 36%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항공 전력의 상황은 더욱 나빴다. 1932년 9월, 러시아 항공기는 200대 일본은 100대 였는데, 1935년 말에 이 수치는 950대 대 220대 격차가 오히려 증가했다. 극동에서 일본 공군력은 지역 전체 공군력의 23%에 불과했다. 

가장 위협적인 것은 소련 참모본부가 전략 폭격을 강조한 것이었고, 극동 소련공군이 다수의 TB-5식 장거리 폭격기를 보유했다는 사실이었다. 이들 폭격기는 일본 본토를 사정권에 두었다.  일본은 이에 상당하는 공중 무기가 없었다.


출처-

PEATTIE, MARK ROBERT. ISHIWARA KANJI (1889-1949) AND THE JAPANESE ARMY, A Dissertation,Princeton University,1972, 20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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