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이시와라 간지와 신해혁명?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마크 페티트에 따르면, 청년 장교 시절 이시와라 간지는 서양의 지배로부터의 아시아의 해방이라는 이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위해서 중국과 일본이 손을 잡아야 했고, 일본의 선례에 따라 중국이 깨어나야 했다. 

중국 개혁의 소망을 가진 이시와라는 자연스럽게 1911년의 신해혁명에 열정적 관심을 가진 일본의 청년 장교들 중 일부였다. 

신해혁명이 발발하던 해인 1911년, 이시와라 간지는 한국의 춘천에서 위관 장교로 근무 중이었다. 그는 1911년 10월 중국 우한에서의 봉기 소식을 접했다. 그는 자신의 병사들을 인솔, 춘천 주변의 산에 올라서, 서쪽인 중국 방향으로 병사들을 정렬시킨 후에 중국 혁명 성공을 기원하는 만세 삼창을 시켰다고 한다.  


출처-

PEATTIE, MARK ROBERT. ISHIWARA KANJI (1889-1949) AND THE JAPANESE ARMY, A Dissertation,Princeton University,197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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