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대 일본의 침략은 육군의 폭주 탓인가?"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고노에 후미마로>

31년의 만주사변에서 37년의 중일전쟁을 거처, 41년의 진주만 기습에 이르기까지
일본의 팽창을 주도한 것은 육군의 광기로 해석할 수도 있다. 막가파 육군이 민간 정부의 자제 명령에도 불구하고 침략이라는 무모한 도박을 벌인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군의 광기에 대한 하나의 예외가 될 수 있는 것은 중일전쟁이 전면전으로 비화되는 과정이다. 

37년의 전쟁발발 초기, 고노에와 일본 육군 참모본부 모두 전쟁의 조기 종결을 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고노에 후미마로의 전쟁관은 점점 과격화된 반면, 참모본부는 시종일관 사태의 정치적 해결, 즉 장개석과의 협상을 통해 끝내자고 주장했다.  말하자면, 중일전쟁의 파국을 이끈 것은 일본 육군 참모본부가 아니라 고노에 총리와 그의 측근 지지자들이었다는 것이다. 

전후에 고노에는 회고록을 통해서, 중일전쟁의 비극을 육군 통제파의 농간 탓으로 돌렸다. 고노에는 태평양 전쟁의 기원을 2-26사건 이후 통제파의 육군권력 장악에서 찾았다. “황도파 장군들의 이데올로기는 배타적으로 소련에만 관련되었다. 그들은, 예컨대, 일본의 중국 개입 혹은 동남아로의 진출을 강하게 반대했다. ... 결론적으로 2월 반란 이후 이 장교들이 제거되자, 통제파에게 일본 외교정책을 변경할 기회가 제공되었고, 이 변화가 후에 중국사변과 현재의 전쟁을 초래했다.” 

Crowley, James, Japan’s Quest for Autonomy: National Security and Foreign Policy, 1930-1938,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6. 248.

이는 책임회피다. 적어도, 중일전쟁의 장기화의 책임은 바로 고노에 후미마로에게 있다고 할 수 있다. 사태의 조기 종결을 주장하는 육군 참모본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8년 1월, 무력을 통해 장개석의 국민정부 타도를 선언한 것은 바로 고노에였다. 이 경우, 폭주한 것은 육군이 아니라 민간인 총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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