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중일전쟁은 아시아의 영구평화를 위한 것!"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스에쓰구 노부마사 末次信正 는 일본 해군 출신으로, 1937년에 내무대신이 되었다. 

스에쓰구는 함대파(艦隊派)의 중심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있었으며, 1930년 런던 해군 군축 회의 때 군령부 차장이었던 스에쓰구는, 군령 부장과 함께 조약에 강경하게 반대하였다. 

고노에 총리가 그를 내무대신에 임명한 것은 육군 참모본부가 중일전쟁의 정치적 해결을 주장하는데 대한, 반론을 스에쓰구가 제공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였다. 

12월 14일, 장관 취임과 더불에 스에쓰구는 기자회견을 열어, 중일전쟁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혔다. 

그에 따르면, 남경 함락과 더불어, 일본은 새로운 전략을 구사할 때가 왔다. 왜냐하면 장개석은 옛 군벌들 중 하나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화북에 "특별한 체제"를 만들어야 하고, 궁극적으로 화중과 화남에 두 개의 체제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스에쓰구는 일본은 이제 동아시아에서의 영구평화를 위한 계획을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동아시아에서 백인을 몰아낸다는 것을 의미할 지 모르지만, 이는 매우 진지한 문제로, 세계사의 거대한 전환이 된다. 세계평화의 관점에서, 만약 유색인종이 해방되지 못하고, 그들이 백인종과 더불어 천부적 평등의 혜택을 받지 못한다면, 그리고 백인의 세계 지배가 개편되지 않는다면, 백인들이 자주 주장하는, 소위 정의와 인류애는 공허한 수사에 불과한 것이 될 것이다."

출처-

Crowley, James, Japan’s Quest for Autonomy: National Security and Foreign Policy, 1930-1938, Princeton: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6. 361-362.

스에쓰구의 영구 평화론은 달콤하게 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스에쓰구의 주장은 당시 고노에 정부에서 중일전쟁의 정치적 해결을 주장한 육군 참모본부의 주장을 비판하기 위해서 제기되었다. 

내무대신의 주장은 , 장개석과 정치적 타협이 아니라, 그와 중국을 무력으로 굴복시켜서, 일본제국으로 통일된 동아시아에서의 영구평화를 주장한 것이다. 즉 영구평화를 주장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전쟁을 중국 전역으로 확대해야만 했고, 장개석이 항복할 때까지 일본은 거대한 중국 대륙에서 총력전에 나서야만 했다. 스에쓰구의 영구평화란, 일본군의 군홧발 아래 정복된 동아시아였다.

중일전쟁이 장기적인 소모전이 된 결과 일본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영구평화가 아니라, 엄청난 자원의 낭비였다. 

그 결과, 일본은 잠재적인 전략적인 적인 소련의 육군과 미국의 해군을 상대하는데 필요한 자원 생산 및 비축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이는 스탈린이 장개석의 중일전쟁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한 이유이기도 했다. 또한 일본 육군 참모본부가 장개석과 협상을 통한 전쟁의 정치적 해결을 주장한 이유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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