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히틀러의 라인란트 점령과 루마니아의 대응?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루마니아와 같은 동유럽 국가의 입장에서 1936년 3월의 히틀러의 라인란트 재무장의 의미는 무엇이었는가?

전간기의 프랑스와 동유럽 관계에서 라인란트는 핵심지역이었다. 프랑스와 동유럽 국가들이 독일의 재무장에 대해서 경계하는 가운데, 만약 독일이 동유럽 국가들을 위협할 경우, 프랑스는 라인란트를 점령하면서, 독일을 양면전의 위험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고 계산 가능했다. 

동유럽과의 관계에서 라인란트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로카르노 조약 이후 독일과의 대결을 회피하면서, 프랑스의 만리장성인 마지노 선 뒤에서 수세적 방어를 선호하게 되었다. 

히틀러의 기습적인 라인란트 재점령에 대해서 프랑스가 속수무책으로 당하자, 동유럽에서 히틀러에게 저항한다는 전략적 기반도 사라졌다. 

프랑스의 무기력한 대응에 대해서, 루마니아 외무장관 니콜라에 티투레스쿠가 프랑스 측에게, "만약 3월 7일에 프랑스가 스스로를 방어할 수 없다면, 어떻게 당신들이 침략자들에 맞서 우리를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인가?" 라고 항의했다. 

라인란트가 독일에 의해 무장되면서, 동유럽에 대한 독일의 무력 침략에 대해서 프랑스가 어떤 군사 원조를 제공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은 더욱 어렵게 되었다. 

나치 독일의 동유럽 이웃국가 입장에서도, 독일에 대한 견제,균형의 전제는 프랑스의 군사원조였지만, 그것이 무기력한 방안이 된 이상, 독일의 힘에 "편승"하는 것이 선택가능한 대안으로 부상하게 되었다.


참고-

Kissinger, Diplomacy (New York: Simon & Schuster, 1994),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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