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유화정책에 대한 오해의 뿌리는?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대전략과 전략의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우선, 대전략의 지리적 범위가 지구적이라 한다면, 전략의 그것은 대륙적이라 정의할 때,

영국의 유화정책은 전략이 아닌, 대전략이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말하자면,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은 비단 유럽의 히틀러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당시 전세계에 걸쳐 존재했던 해가 지지않는 나라 대영제국의 안보를 위해 고안된 지구적인 대전략이었다는 것이었다. 영국은 한정된 자원을 가진 상태에서, 자신의 힘으로 대처하기 역부족인 도전에 대해서 대응의 우선순위를 정해야 했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력이 쇠약해진 마당에, 30년대 중반 이후 독일,이탈리아,일본이라는 3대 파시스트 세력에 맞서 세계적 방어전략을 세워야만 했다.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의 한계를 가진 영국으로서는 신중하게 대처해야만 했고, 유화정책의 배경이란 바로 당시 체임벌린의 조국이 직면한 세계적 위기에 대한 힘의 한계를 가진 영국의 응전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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