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대]프랑스의 독일 압박에 대한 소련의 해석은?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공포는 영혼을 잠식할 뿐만 아니라, 국가정책도 망치는가? 

전간기 스탈린의 소련의 외부세계에 대한 공포는 심각했다. 이 공포를 바탕으로 전간기의 주요 국제문제를 해석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소련 정책 결정자들은 심지어 다른 국가들의 행동이 중립적이며 혹은 심지어 소련에 이익에 될 때 조차도, 그들이 소련에 불리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의심했다. 

역사가 테디 우드릭은 "제국주의 세력이 사회주의의 모국에 대한 피비린내나는 공격을 재개할 것이란 믿음은 크렘린의 신앙이었다. 도스 구제안 The Dawes plan, 로카르노 조약, 독일의 국제연맹 가입 그리고 영 구제안  the Young plan도 모스크바의 시각에서 10월 혁명을 끝장내기 위한 제국주의 세력의 연합 음모를 해석했다. 이러한 공포는 비현실적이었다고 하더라도, 크렘린이 공포를 느낀 것은 현실이었다."

제임스 해리스에 따르면, "라팔로 조약 이후, 독일을 견제하기 위한 프랑스의 강압적 행동을 소련 지도부는 소련에 대한 침공을 위한 사전 조치로 해석했다... 1920년대 초에 소련 첩보부는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소련 침공이 이미 준비 상태에 있었다고 파악했다."


출처-

Jeffrey W. Taliaferro, Norrin M. Ripsman, Steven E. Lobel(eds.), The Challenge of Grand Strategy: The Great Powers and the Broken Balance between the World Wars, Cambridge University Press,2013.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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