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사진-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상하이 게토에서의 유대인 소녀와 중국 친구들>
파시스트 동맹국 일본과 독일은 반유대주의를 공유했을까? 인종문제에 대해서 일본과 독일은 같은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었는가?
게르하르트 크렙스 Gerhard Krebs, 1933-1945년 시기의 일본-독일 관계에서의 유대인 문제,
Krebs G. (2004) The “Jewish Problem” in Japanese—German Relations, 1933–1945. In: Reynolds E.B. (eds) Japan in the Fascist Era. Palgrave Macmillan, New York
이 논문의 초록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독일에서 나치 독일의 부상 이전부터 일본에 반유대주의는 존재했으며, 아돌프 히틀러의 권력 장악 이후에 유대인 음모론을 주장하는 일본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되었다.
국내의 반유대주의자들의 정치적 압력과 더불어, 일본 정부는 독일과 동맹을 맺으면서, 유대인에 대한 가혹한 정책을 실시하라는 베를린으로부터의 압력에 시달렸다.
하지만, 과격파 반유대주의자들을 실망시키며, 일본 정부는 독일의 유대인 정책 지도를 따르기를 주저했다. 대신에 일본 정부는 유대인에 대한 일본인의 모순적 태도를 드러냈다.
막시밀리언 콘리의 관련 논문에 따르면, 독일식 반유대주의는 일본의 전통적인 이데올로기는 인종평등론과 모순되었다고 한다. 제1차세계대전 이래 인종문제에 대한 일본의 공식 이데올로기는 인종평등이었다.
따라서 일본은 유대인을 박해하라는 독일의 요구를 그대로 수용할 수 없었다. 일본은 특정 인종을 박해해야 한다는 논리를 공개적으로 주장할 수 없었다.
실제로, 1930년대에 만주국은 인종 평등 국가로 선전되었다. 일본이 동유럽 출신 유대인 난민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모순이었다.
일본 관리들도 인종평등의 수사에 동조했다. 1939년 일본 외상 아리타는 "유대인은 차별받지 않을 것"이라 선언했다. 보다 명시적으로, 일본 기관에서 유대인 음악가들을 추방하라는 나치 독일의 요구에 대해서 일본 외무성은 "우리 정부는 인종 차별을 지지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어떤 것도 할 수 없고, 유대인을 지위에서 몰아내는 행동을 할 수 없다."고 답했다.
Maximilian Conley, Facing the Champion of the West, The Origins of Japan’s Wartime Jewish Policy,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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