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공포의 시작?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공포는 전간기의 개막과 동시에 시작된 것인가?

후대인의 관점에서 보면, 베르사유 조약에서 승전국 프랑스는 독일의 장래 위협을 막는 조치를 취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세력은 프랑스의 강대국 지위를 위협하는 잠정적 존재론적 위협이 되었다. 1920년, 프랑스 정보부는 독일의 산업 잠재력이 프랑스의 3배가 된다고 평가했다. 뿐만 아니라, 독일의 인력은 조만간 프랑스의 2배를 넘을 것으로 전망되었다. 산업 전쟁의 시대에서 이런 장점은 결정적이었다. 

이런 정보의 의미란, 장래의 유럽 전쟁에서 프랑스는 영국의 동참을 반드시 끌어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한 정보평가에 따르면, "영국과 그 제국의 심각한 중요성을 인정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유럽에서의 진정한 세력균형을 오해하게 만들 것이다."라 경고했다. 


Jeffrey W. Taliaferro, Norrin M. Ripsman, Steven E. Lobel(eds.), The Challenge of Grand Strategy: The Great Powers and the Broken Balance between the World Wars, Cambridge University Press,2013. 45

전간기 프랑스 안보전략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중심적 위치는

이후 뮌헨협정 국면에서, 프랑스 외교가 영국 네빌 체임벌린의 유화정책에 추종할 수 밖에 없게 만들었다. 

프랑스에게 영국과의 공조가 필수적이었기 때문에, 영국이 독일에 대해 유화를 결정한 이상, 프랑스 단독으로 독일을 적대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만아니라 위험했다고 볼 수 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