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팅턴, 일본 제국 정치제도의 치명적 약점은? 미분류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통수권의 독립,

일본 제국의 정책결정 제도를 평가하면서, 사무엘 헌팅턴 Samuel Huntington 은 민군 관계를 지배한 것은 "한결같은 무질서" 였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통수권의 독립이었다. 전전의 일본은 사법,입법,행정,통수라는 4권 분립국가 상태였다. 통수권 독립은 1889년의 메이지 헌법 11조에 명시되었고, 헌법에 따라 군대에 자율성이 부과되었다. 

천황은 최고사령관이었다. 참모총장은 군사문제에 대해서 정부와 국민이 아니라 천황에게만 책임을 졌고, 육군과 해군 장관은 천황을 통해서 정부에 예산 배분을 위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 즉 통수권의 독립 Tosuiken no Dokuritsu 統帥權の獨立 은  민간의 감시로부터 군통수권을 독립시키면서 일본의 정부정책과 국가전략에 군부가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만들었다.


참고-

Patalano, A. (2015). Feigning grand strategy -Japan, 1937–1945. In J. Ferris & E. Mawdsley (Eds.), The Cambridge History of the Second World War (The Cambridge History of the Second World War, pp. 159-188).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67.

본래 통수권 독립은 유신초기 사이고 다카모리의 난 같은 비극이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추진된 것이다. 통수권을 천황에게 부여하여, 군대가 군사력으로 나라를 뒤흔드는 일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이후 통수권 독립은 일본 군대가 정부의 통제를 따르지 않고, 특히 만주사변 이후에는 폭주를 가능하게 만든 제도적,법적 근거를 제공했다. 



덧글

  • deokbusin 2018/11/26 19:16 # 삭제 답글

    프로이센-독일제국도 군통수권은 독립된 상태였습니다. 정확히는 군대가 의회의 감독과 통제를 받지 않는 것이었지만, 대신 군대도 군정부문은 내각의 일원으로서 내각의 다른 구성원과의 협조를 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메이지 헌정의 진짜 문제는 군대 통수권의 독립보다도 내각총리대신이 내각 운영에 있어서 내각을구성하는 다른 대신들에 대한 통제력을 성문헌법으로 보장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즉 총리대신과 다른 대신은 모두 내각을 구성하는동등한 입장이지, 총리가 다른 대신을 해임하는 등 우월한 입장은 아니었다는 점이지요. 심지어 내각이라는 조직명칭이 헌법에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일본군대의 통수권 독립은 메이지 헌법의 이러한 결함에서 파생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독일제국도 군통수권이 의회와 내각에서 벗어난 상태이긴 했어도 내각 군정의 톱이 총리와 동격이라는 것은 아니었거든요-특히 비스마르크의 성깔을 생각하면. 헌법상 독일제국총리와 동격인 존재는 군참모총장이고, 독일의 경우는의회를 장악한 자유주의자들에 의한 군대간섭을 최대한 막기 위해서라는 측면에서 봐야 할 겁니다.
  • 파리13구 2018/11/26 19:54 #

    프로이센이 망한 것도 군의 문민 통제의 부재에서 찾아야 한다고 볼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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