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 만주사변에서 패망에 이르기까지의 일본의 전쟁에 대한 연구는 태평양 전쟁과 중일전쟁을 분리했다.
전자가 1941-1945년의 일본 해군의 전쟁에 집중했다면, 후자는 1937년 혹은 1931년에 시작된 일본 육군의 전쟁에 집중했다.
일본은 자원과 국력의 한계를 가진 나라였고, 이 점은 이시와라 간지 같은 전략가들이 심사숙고한 문제였다.
그런 일본에서, 육군과 해군이 하나의 전쟁을 만들지 못하고, 전자는 대륙에서 소련과 영국의 지원을 받는 중국과, 후자는 영국과 미국, 네덜란드를 상대로 전쟁을 벌인 대참사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일본의 대참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하나의 시각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최고위 정책결정 구조의 어떤 문제가 자신의 국력을 고려하지 못한 동시다발적 침략을 결정하고, 침략과정에서의 일본을 국제적 왕따로 만든 것인가?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하나로 본다고 할때, 일본이 벌인 이 전쟁을 다르게 부를 필요가 있게 되며, 당시 이 나라의 근본적 한계는 "대전략" grand strategy 의 부재라 진단 가능하다.
참고-
Patalano, A. (2015). Feigning grand strategy -Japan, 1937–1945. In J. Ferris & E. Mawdsley (Eds.), The Cambridge History of the Second World War (The Cambridge History of the Second World War, pp. 159-188).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63-164.
덧글
문제는, 정치권력이 대립을 조정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미국과 영국의 우선 순위는 유럽이었으니, 유럽전역이 어느정도 끝날때까지 일본과 전쟁할 필요를 못 느낄 뜻 합니다
영국과 미국은 동남아 영국,네덜란드 식민지 공격에 대해서
양국이 무력으로 보복한다는데 합의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