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7월]소련의 조기 붕괴에 대한 미국의 공포?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41년 7월, 독일의 공격으로 소련이 조기에 붕괴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세계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즉 공포의 파장은, 극동,동남아, 도쿄,워싱턴,대서양에서의 각국의 정책결정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이에 대해서 그들은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1941년 7월, 독소전쟁 초기 독일의 파죽지세에 직면한 미국은 소련의 이른 붕괴에 대비해야 했다. 41년 7월, 미군 참모본부는 “소련 붕괴는 수주 안에 현실이 될 것이다.”라고 비관적으로 전망했다.

소련이 붕괴하면, 독일은 주요 군사력을 서유럽으로 배치하여, 영국 본토와 대서양을 압박할 것으로 보였다. 이에 대한 미국의 대응은 바로 7월 7일의 미국의 아이슬란드 점령이었다. 루스벨트는 소련 붕괴 이후 독일이 군사력을 서부 유럽으로 전환할 것에 대비, 아이슬란드 점령을 지시했다.

미국의 아이슬란드 점령에 대해서, 히틀러는 소련 붕괴 이전까지 대응을 연기하라고 명령했다. 히틀러는 7월 7일,미국의 아일랜드 점령에 관한 래더의 보고를 접하고 ‘당분간 무시해도 될 도전행위’로 판단하였다. 왜냐하면 승승장구하는 동부전역의 영향이 전체상황,특히 미국의 태도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이므로, 그는 1개월 내지 2개월 정도 지나서 미국과의 전쟁을 치러도 늦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7월 25일,히틀러는 래더에게 동부전역이 종료되기 전에는 미국과의 첨예한 대립을 유보해야 한다고, 보다 구체적인 표현을 하였다. 

이렇게 독소전쟁의 조기 종결 가능성에 직면해서, 미일 양국은 대서양에서 미국과 독일의 충돌 전망이 높아짐에 따라, 삼국동맹 때문에 미국과 일본이 전쟁에 돌입하는 사태를 막아야 한다는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독소전쟁 발발 이전부터 미국은 일본 측에게 마쓰오카가 협상의 중요한 걸림돌이라 주장했다.

대서양 문제로 미국과 전쟁을 시작해야 되는 삼국동맹의 의무에 대해 경계한 일본은 7월 18일의 개각을 통해서 마쓰오카를 경질했다. 이는 일본 정부가 7월에 히틀러가 요청한 일본의 소련 공격에 반대하며, 대서양 문제로 미국과의 전쟁을 시작할 의사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마쓰오카 경질을 계기로, 미일협상의 중요 걸림돌 중 하나가 사라진 셈이었다. 협상의 이 국면에서, 일본이 삼국협상을 무력화하는 대신에, 미국이 일본의 남방진출을 다소 묵인하는 모두스 비벤디, 즉 잠정협정이 필요했다. 미국의 입장에서도, 일본이 북진하여 소련을 공격하는 것 보다는 남방을 공격하는 것은 차악이라 할 수 있었다. 

만약 당시 세계사의 문제가 미일 양국간의 문제였다면, 타협점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문제는 양국 문제를 넘어선 세계적인 문제였다. 따라서 양국은 자신이 가담한 동맹 세력의 눈치를 살펴야 할 처지였다. 미일의 타협을 반대한 것은 일본에 대해서 독일이, 미국에 대해서 영국과 중국이었던 것이다.  

참고

안드레아스 힐그루버, 국제정치와 전쟁전략-제2차 세계대전,한울 아카데미,1996. 95.



덧글

  • wolf 2018/11/26 22:49 # 삭제 답글

    위 글을 읽으니 진주만 공습보다 독소전이 미국의 참전에 더 직접적인 이유인거 같습니다.
    프랑스 함락후에 영국본토항공전때도 관망하던 미국이 독소전 1개월만에 군사행동을 개시한 걸 보니 진주만 공습은 참전의 명분을 만들어준 거 뿐이네요
    만일 히틀러가 소련침공을 하지않고, 장기간 미루었다면 미국의 참전이 늦어졌을까요
  • 파리13구 2018/11/26 22:54 #

    미국은 직접 개입 없이, 영국을 최대한 지원하는 것으로 하려했지만.

    소련이 붕괴가 우려되자,

    대서양에서의 독일과의 충돌을 기정사실로 삼았다고 봅니다.

    역사에서는 이를 대서양에서의 선전포고 없는 전쟁이라 합니다.

    독소전쟁이 없었다면,

    미국의 고립주의 여론을 설득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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