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 영국의 아시아 식민지와 미국의 일본 정책?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41년의 미국과 일본의 평화교섭에서 영국의 아시아 식민지 안전 문제가 쟁점이 되었다. 일본에 대한 미국의 평화 의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의지를 제약한 것은 아시아에서의 영국의 권익에 대한 미국의 근심이었다. 41년 미국이 태평양에서 일본과의 평화 이상으로 중시한 것은 독일에 대한 영국의 항전이었고, 항전의 지속을 위해 필요한 것은 극동에서의 영국 권익의 유지였다. 

주일 미국대사 조셉 그루는 다음을 지적했다. : "미국의 안보는 다소간 영국 함대에 의존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대영 제국의 지원을 받아 유지되어 왔고, 유지될 수 있었다. 우리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적어도 유럽에서의 전쟁에서 승리하거나 패할 때까지 태평양에서의 현상유지를 위해서 분투해야만 한다. "

1941년 7월에, 터너는 주일 미국대사 노무라에게, "세계의 어느 지역에서 이든지, 영국의 장래 안보에 영향을 주는 어떤 사안도 방어적 관점에서 볼때 미국의 관심사이다." 일본의 인도차이나 점령은 싱가폴의 영국 식민지와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위협할 수 있다. "만약 영국이 현재의 통제권을 상실하게 되면, 이는 치명타가 되어 영국 본토 방위의 통일성을 위협하게 되며, 본토가 독일에게 정복당하게 될 것이다." "극동에서 일본의 공격으로 영국이 유럽에서의 전쟁을 위해 인도양과 호주 지역을 통해 입수되는 필요 자원이 차단되어, 영국이 약화된다면, 이는 미국에 대한 간접적 공격에 다름아니며, 따라서 우리는 이에 대해 무관심할 수 없다. " 


출처-

Margaret Lamb and Nicholas Tarling, From Versailles to Pearl Harbor: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 in Europe and Asia, Palgrave; 2001, 178.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