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프랑스 항복과 미국의 아시아 정책?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데이비드 레이놀즈에 따르면, 1940년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2번까지만 임기를 맡는다는 조지 워싱턴의 전통을 깨고 3선에 도전한 것은 같은 해 6월의 프랑스 항복에 따른 위기감 때문이었다. 

1940년 6월의 독일에 대한 프랑스의 항복은 일본에게 기회이자 장애물이 되었다. 물론 인도차이나 식민지를 가진 프랑스의 몰락은 일본의 남방 침략을 용이하게 만들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일본에게 새로운 장애물이 등장했다. 바로 미국이었다. 히틀러의 유럽 지배로, 대서양의 안전을 위협받은 미국은 아메리카 대륙의 안보를 위해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위한 2개의 대양해군 건설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동시에, 미국은 영국의 저항이 계속되기를 기대했고, 이를 위해서 큰 도움을 제공했다. 이것이 바로 일본이 야심을 가지고 있는 동남 아시아의 중요성을 높였다. 만약 영국의 저항이 아시아와 호주의 인력과 자원에 대한 접근을 통해 유지된다고 한다면, 미국은 일본의 아시아 지배를 막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즉, 영국의 저항을 지속시키기 위해서 미국은 동남아시아에서 일본의 팽창을 견제해야만 했다. 

Margaret Lamb and Nicholas Tarling, From Versailles to Pearl Harbor: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 in Europe and Asia, Palgrave; 2001,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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