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영국, 극동 정책의 자율성을 견제한 것은? Le mon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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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6월의 텐진 위기는 중국의 텐진의 영국 조계를 일본군이 봉쇄하면서 양국이 무력충돌 직전까지 간 사건이었다. 다행히도 무력 충돌을 피했다고 하더라도, 영국은 중국에서의 일본과의 충돌 가능성을 가진 상황에서 1939년 유럽에서의 독일과의 전면전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아시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 각각 일본과 독일과의 전쟁에 연루될 위기에 처한 영국은 유럽에서의 유화정책과 비슷한, 이른바 극동에서의 유화정책의 유혹에 직면했다. 하지만, 이런 유혹을 견제한 것은 바로 미국이었다.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주미 영국대사 로디언 경 Lord Lothian (June 1939 – December 1940)은 다음을 강조했다 : 영국은 태평양에서의 안보에 대해서 미국에 실제로 의존하고 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중국을 희생해서 일본과 타협하기로 결정한다면, 미국 여론은 확실히 우리에게 등을 돌릴 것이며, 그러면 우리는 홀로 이 사태에 직면해야만 한다. 

따라서 영국은 중도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영국은 워싱턴을 만족시킬 정도로 확고하게 행동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일본과 충돌할 정도로 경직된 자세를 취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영국은 아시아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의 동맹인 미국의 동정을 사야하지만, 동시에 미국을 전쟁에 끌어들이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로디언 대사에 따르면, "미국의 태도는 우리를 놀라게 만들 정도로 불공정하고,비논리적이며, 심지어 삐딱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대외 문제에 대한 미국의 행동 규칙은 우리가 현재 잘 알고 있는 사안이며, 미국의 원조에 대한 우리의 필요가 상당한 만큼, 우리는 그들의 규칙에 맞게 우리의 행동을 조율해야만 한다."라 강조했다.


출처-

Margaret Lamb and Nicholas Tarling, From Versailles to Pearl Harbor: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 in Europe and Asia, Palgrave; 2001, 156. 



덧글

  • 2018/11/25 01:48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11/25 07:1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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