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도발에 대한 프랑스와 영국의 인식차는?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만주사변에이어 중일전쟁에 이르기까지 극동에서의 일본의 거듭된 도발에 대해서, 프랑스와 영국은 위기상황에 대한 인식 차이를 가지고 있었다.

우선, 인도차이나의 식민지 보유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극동에서 일본의 야망에 대해서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적은 관심을 보였고,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자원이 부족했다. 1937년 이후, 프랑스군은 일본이 중국 정복을 위해서 상당한 시간 동안 힘을 소모할 것으로 예상했다. 그 동안 프랑스는 유럽과 지중해 문제에 집중하고, 이곳에서의 승리로 일단은 만족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극동에서의 프랑스의 일시적 패배에 대해서는 유럽 승리 후 후일을 도모한다는 방침이었다. (극동의 방위를 사실상 포기한 프랑스는 독일에 대한 유화정책의 동기가 영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영국의 상황은 달랐다. 그들은 아시아에서 영연방 국가인 호주와 뉴질랜드의 압력을 받았다. 두 나라는 일본의 도발에 따라서 안보를 위협받았고, 그들은 동남아의 미얀마,싱가포르 같은 자신의 식민지의 중요성을 의식해야만 했다. (영연방의 존재 때문에, 프랑스 처럼 영국은 유럽 방위에만 국력을 집중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럽,지중해,극동에서의 동시다발 전쟁은 영국에게 악몽이었다. 따라서 영국은 일본과의 전쟁 위헙을 줄일 수 있는 정책 추진 동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 동기를 제한하고,견제한 것은 미국과 중국이었다.


참고-

Margaret Lamb and Nicholas Tarling, From Versailles to Pearl Harbor: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 in Europe and Asia, Palgrave; 2001, 129-130. 



덧글

  • 까마귀옹 2018/11/12 14:55 # 답글

    프랑스에게 인도차이나 지역은 다른 식민지, 특히 알제리와 같은 곳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졌다, 이거군요.

    여기에 더 보충을 하면, 영국으로선 해외 식민지의 마지막 자존심인 '인도' 또한 걸려있다는게 이 문제의 원인이라고 봅니다.
  • 파리13구 2018/11/12 15:01 #

    네, 그렇다고 봅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

2018 대표이글루_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