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 영국 해군전략의 딜레마?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31년에 만주사변이 발생할 즈음은, 독일의 히틀러 집권 이전이었고,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가 지중해를 위협하기 전이었다. 

1931년 4월, 영국의 해군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군축으로 인해) 우리의 주력함의 수가 이제 심각하게 감소했고, 우리의 권익 보호를 위해서 우리 함대를 극동으로 파견해야 될 처지가 되었다. 주력함의 부족으로 만약 유럽 강대국과의 분쟁이 발생한다면, 영국 해군은 우리의 무역과 본토 안보가 달려있는 본토 주변 해역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만주사변으로 일본이 극동에서의 영국의 권익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1933년 이후 히틀러의 부상은 유럽에서의 위협을 증가시켰고, 이탈리아와의 관계 악화는 지중해에서의 해상 도전을 의미했다.

역사가 폴 케네디는 몰락기에 접어든 제국의 악순환에 대해서 다음을 지적했다. 

“과거의 ‘일등국’들이 직면했던 공통적인 딜레마는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쇠퇴하는 동안에도 자국의 지위에 대한 외부 도전의 증 대로 인해 어쩔 수 없이 더욱 많은 자원을 군사 부문에 할당할 수밖에 없었고, 이로 인해 생산적인 투자가 위축되어 시간이 갈수록 성장 속도가 떨어지고, 세금이 늘어나고, 지출 우선순위를 둘러싼 국내적 분열이 심해지며, 군사비 부담 능력이 약해졌다는 것이다.”

[헤어프리트 뮌클러,제국-평천하의 논리,책세상,2015.p.320.에서 재인용.]

31년의 영국은 대공황의 여파로 군축이 시대정신인 상황에서, 정차 유럽,지중해,극동의 3지역에서의 부상하는 강대국의 도전에 직면해야 할 처지였다. 즉 영국에 대한 도전은 증가하지만, 방위비를 늘릴 수 없는 난관에 직면해 있었다. 따라서, 유화정책에 대한 유혹이 높았다. 


참고-

Margaret Lamb and Nicholas Tarling, From Versailles to Pearl Harbor: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 in Europe and Asia, Palgrave; 2001, 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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