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아비시니아 위기와 주저하는 영국 그리고 일본?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무솔리니 왈, "국제연맹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1934년 11월에 이탈리아-아비시니아 국경에서 양국 군대가 심각하게 충돌하고, 아비시니아가 침략을 국제연맹에 고발하면서, 아비시니아 위기가 시작되었다.

1931년 일본의 만주사변 도발과 더불어, 1934-35년의 아비시니아 위기는 세계의 주변부에서 평화체제의 중심인 국제연맹을 뿌리채 뒤흔든 사건이었다. 

독일 견제에 몰입된 프랑스는 이미 무솔리니에 대한 유화로 입장을 정한 것처럼 보였다. 35년 1월에 프랑스 외상 피에르 라발이 로마를 방문, 무솔리니와 여러 협정을 체결했다. 

영국의 근심은 위기가 고조되어, 국제연맹에 제재에 나서고, 영국이 제재 이행을 위해서 지중해에 무력 개입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었다. 35년의 영국 여론도, 국제연맹을 지지하고, 침략국에 대한 경제제재의 행사를 지지하는 입장이었다. 연말에 선거를 앞둔 영국 정부는 여론의 눈치를 살펴야만 했다. 

국제연맹이 주도하는 이탈리아 제재에 영국이 동참하는 문제에 제동을 걸고 나온 것은 영국 참모본부였다. 참모본부는 영국의 국제적 지위에 제기될 수 있는 위험을 강조했다. 

만주사변을 통해서 극동에서의 일본의 팽창주의가 이미 위협이며, 히틀러의 독일은 유럽 대륙에서 영국의 가성 적국인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영국은 지중해에서의 분쟁에 휘말리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영국군 참모본부는 무솔리니의 도발 자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지중해 함대가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미친 개"와도 같은 도발에 의해 패배할 리가 없다고 전망했지만, 이탈리아와의 갈등으로, 장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일본과의 분쟁을 위한 영국 해군력의 소진을 우려했다. 또한 지중해 갈등으로 공군력이 감소되면, 영국의 대-독일 공군력 견제력에 해가 될 것이 분명했다. 히틀러는 1935년 3월이 되면, 독일과 영국의 공군력이 대등하게 될 것이라 호언장담했다.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와의 분쟁에서 프랑스가 영국을 지원하는지 여부가 불분명했다. 

이상과 같은 입장들을 고려해서, 영국은 무솔리니의 아비시니아 도발에 대해서 신중하게 대처해야 할 처지였던 것이다.


참고-
Margaret Lamb and Nicholas Tarling, From Versailles to Pearl Harbor: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 in Europe and Asia, Palgrave; 200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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