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일본의 삼국동맹은 독일 견제를 위한 것?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40년 9월에 일본은 왜 독일,이탈리아와 삼국동맹을 구성한 것인가?

외무장관 마쓰오카는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일본은 독일과 손을 잡을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삼국동맹 준비를 위한 실무회담에서 , 해군 군령부의 오노 대좌는 다음을 주장했다. 즉, 전후 독일이 아시아의 옛 유럽 식민지에 대한 이권을 주장하는 것을 사전에 막기 위해서 동맹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삼국동맹의 목적은 독일 견제라는 것이었다. 오노는 유럽에서 승리한 이후 독일은 그 야심의 방향을 아시아 쪽으로 돌릴 수도 있다고 경계했다.

“때에 따라서 독일은 전투에 네덜란드령,프랑스령 및 지나에서 활발한 경제활동을 펼칠 수 있습니다. (중략) 프랑스령, 네덜란드령을 자신의 영토로 삼지는 않더라도, 활동적인 ‘나치,당원을 파견하고 이곳을 자신들의 정치적 지도 아래 두는 것도 생각할 수 있으므로 일본의 프랑스령,네덜란드령 공작은 이를 예방하기 위해 급속함을 요합니다. 일본으로서는 프랑스령,네덜란드령을 유럽에서 분리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말하자면, ‘독일은 전후 네덜란드령 (동인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중국에서 활발한 경제활동을 펼칠 것이다. 나치당원을 파견해 독일의 영향아래 두는 일도 생길 수 있다. 그러므로 일본의 프랑스령, 네덜란드령 정책은 독일의 공작을 예방하기 위해 서두를 필요가 있다. 종주국인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독일에 패배했는데,유럽전쟁의 승패 여부가 동남아시아지역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피하고 싶다.’고 오노는 이렇게 주장합니다. 

참고-

가토 요코, 왜 전쟁까지- 일본 제국주의의 논리와 세계의 길 사이에서, 사계절,2018. 233.


  -1940년에 오노 대좌가 우려한 것은,

유럽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독일이 동남아시아에서 이권을 챙기는 사태였다.

실제로 보면, 전쟁 중에도 독일은 이미 프랑스를 압박, 인도차이나에서의 이권 확립을 위해 나섰고, 일본은 이에 저항했다.

독일은 자신의 통제하의 프랑스의 비시 정부를 통해서, 인도차이나에서의 경제적 이권을 얻으려 했지만, 일본이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1940년 9월의 프랑스-독일 경제 협정이 문제였다. 협정을 통해서, 비시 정부는 독일에게, 다음 해인 41년에 인도차이나 고무 생산량의 대략 2/5를 보장했다. 그리고 프랑스 자신은 고무 생산량의 1/4을 확보했다.

일본은 이 협정에 대해 분개했고, 이는 인도차이나 고무에 대한 자신의 지분에 대한 위협이자, 아시아에서의 일본 패권에 대한 중요한 도전으로 간주했다. 

1940년 10월 말, 일본은 독일에게, 사전 협의 없이, 인도차이나와 네덜란드 동인도와 협정을 체결하지 말라고 강하게 요구했다.

참고-
Ian A. McLaren, Nazi Germany and Imperial Japan: The Hollow Diplomatic Alliance, 




덧글

  • eggry 2018/10/31 14:37 # 답글

    유명한 소설 원작 드라마 '높은 성의 사나이'에서 실제로 미국을 장악한 건 독일인데 태평양 쪽을 동맹국이라고 떼어줬고 히틀러 사후 동맹 붕괴를 우려하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런 실제 배경도 있군요. 자신은 물론 독일도 너무 과대평가 한 듯;;
  • 파리13구 2018/10/31 15:01 #

    1940년 5월에 영국이 독일에 항복했다면,

    아시아 식민지는 일본이 차지하려고 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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