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사이온지 긴모치, 일본의 장래 진로에 대해서...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국제연맹의 리튼 보고서가 만주국의 존재를 인정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사실이 알려진

1932년 10월 2일에 당시 83세의 일본 정계의 원로 사이온지 긴모치는 이렇게 말했다.

"일본은 영국, 미국과 함께 사이하이 (과거 싸움터에서 싸움을 지휘하던 대장이 쥐던 물건으로 짧은 손잡이 끝에,두꺼운 종이를 가늘게 잘라 만든 술이 달려 있다-옮긴이)의 손잡이를 잡아야 세계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처럼 사이하이 끝에 매달려 있어서야 일본이 세계적으로 진전할 여지가 있겠는가. 국가의 앞날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를 두고 이토공[작]을 비롯해 우리는 ‘동양의 맹주인 일본’이라든가 ‘아시아의 먼로주의’라든지 이런 협소한 인식이 아니라 오히려 ‘세계의 일본’이라는 점에 착안해왔다. 동양의 문제 또한 영미와 협조할 때에야 비로소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 (중략) 좀더 세계의 대국 大局 (큰 형세)에 착안해 국가가 나아갈 방향을 고찰해야 한다. 나 또한 여명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지만 가능한 한.봉공할 생각이다." 

가토 요코, 왜 전쟁까지- 일본 제국주의의 논리와 세계의 길 사이에서, 사계절,2018. 157.

- 사이온지가 세계의 일본을 주장했다면, 

일본 군부는 일본의 아시아 패권을 주장하면서 세상으로부터의 고립을 자초했다. 




덧글

  • 함부르거 2018/10/31 09:53 # 답글

    확실히 메이지 시대의 원로들은 후대와는 다르게 외국 경험도 많고 시야도 넓었다는 느낌입니다. 어째 후대로 갈 수록 주요 인물들의 수준이 퇴화하는 게 전전 일본의 지도층이었던 거 같아요.
  • 파리13구 2018/10/31 10:15 #

    사이온지는 19세기 말에 프랑스에 10여년 동안 체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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