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에 아키라,태평양 전쟁의 기원의 쟁점은?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태평양 전쟁의 기원

1931년 9월 18일, 남만주의 묵덴(Mukden,심양) 외곽에서 소수의 일본과 중국의 병사들이 충돌했다. 이 사건은 장기적인,오래 끄는, 끝이없는 중국과 일본 간의 전쟁으로 발전했다. 10년 후인 1941년 12월, 일본의 공군,해군 그리고 육군이 아시아와 태평양의 전역에서 미국,영국,네덜란드의 식민지를 공격했다. 이것이 바로 중국,미국,영국,네덜란드 그리고 궁극적으로 프랑스,소련의 연합 세력에 대한 일본의 전쟁의 시작이었다.

어떻게 아시아 두 나라 사이의 전쟁이 한 나라(일본)가 다국적 세력의 동맹에 대항하는 전쟁으로 발전한 것인가? 명백하게, 일본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사태 전개는 이러한 동맹의 형성을 막는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다른 한편으로, 중국의 관점에서 보면, 이는 일본을 고립시키고, 처벌하기 위한 국제 세력을 만들기 위한 자신의 노력의 정점이었다. 왜, 1931년에 일본이 만주를 석권할 동안 방관했던 서양 세력이 10년 후에, 일본과의 전쟁 위협까지 감수하면서도 중국을 원조하기로 결심하게 되었을까? 

이것이 바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제2차 세계대전의 기원에 대한 중요한 쟁점들이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은 2개의 전쟁이었고, 유럽과 대서양에서의 전쟁이 하나였다면, 아시아와 태평양에서의 그것이 다른 하나였다. 대부분의 경우, 두 개의 전선은 별개였다. 한 전역에서 전개된 전투와 폭격은 다른 전역에 거의 연계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시아 영역에 큰 관심을 두지 않고도 유럽에서의 전쟁의 기원을 논하는 것은 상당히 가능하지만, 그 반대는 통하지 않는다. 유럽 강대국들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깊이 개입했고, 중일 갈등을 다국적의 그것으로 만드는데 공헌했다. 더 나아가, 미국은 유럽 전쟁의 직접 원인에 거의 관련되어 있지 않았음에도, 점진적으로 중요한 아시아-태평양 세력으로 부상했고, 자신의 입장을 중일 전쟁의 전개 과정에 직접 관철시키려고 했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유럽 보다 더욱 포괄적인 세계적인 경쟁이 전개된 곳이었고, 이 사실은 태평양 전재의 기원을 논의하는 사람은 항상 명심해야 하는 점이다. 그럼에도, 1931년에, 이 지역은 나머지 세계로부터 고립된 것 처럼 보였고, 일본은 집단 보복을 두려워하지 않고 침략 행동을 자행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왜 30년대 초에 일본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반면, 10년 후에, 이 나라는 다국적 동맹의 견제를 받게 되었는가. 이것이 바로 이 책이 풀고자 하는 문제이다. 

Akira Iriye, The Origins of the Second World War in Asia and the Pacific, Longman Group,199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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