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영국 여론에게 뒤통수를 맞은 국제연맹?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30년대 국제연맹이 표방한 이상주의의 한계는 무엇이었나? 특히 국제여론의 힘으로 국제사회의 악당국가의 침략을 저지할 수 있다는 영국의 로버트 세실의 믿음은 어떻게 배반당했을까?

영일동맹의 유산 탓이었는지 몰라도, 1931년, 일본의 만주사변 도발에 대한 영국 여론은 기이했다. 극동에서의 일본의 불만에 대해서 영국 여론이 대체로 동정적이었다. 영국 외무차관 로버트 벤시타트 Robert Vansittart에 따르면, "계몽된 영국 여론은 일본 편"이었다. 

영국 정부의 정책에 영향을 준 영연방 국가들은 국제연맹 규약 중 제재 조항에 대해 불만을 가졌다. 

1932년 가을, 호어 Hoare 는 영국의 중도와 우파 여론은 일본에 대한 공격적이거나 적대적인 조치에 대해 반대할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위기가 해결 국면에 접어들자, 사이먼 외무장관은 지금까지 영국 여론은 대체로 친일적이었다고 진단했다.

심지어, 일본의 침략에 대한 영국 여론의 강한 반발을 기대했던 로버트 세실도 1932년에, 영국의 부유층은 매우 건강하지 못한 의견을 가졌고, 극빈층은 만주의 위기에 대해 무지했다고 진단했다. 또한 중산층도 국제연맹의 집단안보를 위해서 바리케이트 뒤에서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점을 세실이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30년대 국제연맹의 이상주의는 평화를 위한 힘으로 국제여론에 의지하려 했지만, 만주사변에 대한 영국 여론은 일본에 대한 동정을 표하면서, 로버트 세실 같은 이상주의자들을 당황시켰다. 

이것은 이른바 20년 동안의 위기의 서막이었는가?

참고-

Christopher Thorne, The Limits of Foreign Policy: The West, the League, and the Far Eastern Crisis of 1931–1933 (London, 1972),  141. 



덧글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