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오언 래티모어의 만주에 대한 인식?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오언 래티모어 Owen Lattimore 는 1930년대 미국에서 대표적인 동아시아 전문가였다.

래티모어는 1931년의 만주사변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만주사변을 맞이하여, 래티모어는 관련 서적을 1932년에 출간했다. 

래티모어, 만주-갈등의 뿌리, 1932년 
Lattimore, Manchuria, Cradle of Conflict (New York, 1932)

책에서 래티모어는 만주를 세 개의 문명이 충돌하는 공간으로 규정했다. 이른바 만주에서의 문명 충돌론이었다.

세 문명이란 중국,러시아,서양이었고, 일본은 만주에서 서양문명을 대표해서 투쟁 중이란 주장이었다. 적어도 래티모어의 시각에서 보면, 1931년의 만주사변은 폭력적 침략으로 규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만주사변에서의 일본의 침략을 서양문명의 가치를 위한 투쟁으로 인식하는 래티모어 류의 주장이 영향력을 가진 상황에서,

만주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대-일본 정책이 강한 억지력을 가지기는 적어도 당시에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극동에서 일본은 서양문명을 대변한다?]

그렇다면, 궁금해 지는 것이 만주와 중국에서의 일본의 도발이 서양문명 수호를 위한 투쟁이 아닌, 지역 질서를 위협하는 야만적 침략이란 인식,

이러한 미국의 인식 전환이 일어난 것은 언제이며, 이 인식 전환이 미국의 극동 정책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참고- 

Christopher Thorne, The Limits of Foreign Policy: The West, the League, and the Far Eastern Crisis of 1931–1933 (London, 1972), 16.




덧글

  • 까마귀옹 2018/10/22 16:50 # 답글

    단언하긴 어려운 문제이지만 제 나름대로 요약을 하면 먼저 3가지를 꼽고 싶습니다.

    1. 유럽 정세가 급변하면서 러시아-소련이 유럽 쪽에 집중하게 되고, 이로 인해 일본과 충돌할 가능성이 상당히 낮아지게 됨. → 일본과 소련의 관계가 과연 러시아와 서양세력 간의 대립인지에 대한 회의감 발생

    2. 일본의 팽창이 만주에 멈추지 않고 미국을 포함한 서양의 동아시아(홍콩, 상하이 등)-동남아(필리핀, 인도차이나 등) 지역에 확보한 기존의 기득권까지 침해하게 생겼다는 위기감 발생.

    3. 중국 국민정부의 안정 및 서구 열강과의 접촉, 일본의 군국주의화로 인해 1번과 유사한 회의감 발생.

    물론 자의적인 추측이므로 지적 환영합니다. 그리고 이게 맞더라도, 다른 이유들이 또 있으리라 봅니다.
  • 파리13구 2018/10/22 17:01 #

    저는 40년 9월의 삼국동맹이 미국의 태도 변화에 결정적이었다고 봅니다.
  • 까마귀옹 2018/10/22 20:26 #

    삼국동맹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점은 동의합니다만, 그전에 바뀌는 배경으로 제가 주장한 것 처럼 다른 이유들도 더 있지 않을까 해서요. 추축동맹은 그 인식 전환의 '완성'이지 '시작'은 아니지 않습니까.
  • 파리13구 2018/10/22 20:41 #

    도로시 보르그의 연구에 따르면,

    일단 중일전쟁의 초기 까지 극동 문제에 대한 미국의 개입은 미미한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38년,39년에도 미국의 인식에 결정적 변화를 준 사건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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