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년]만주사변에 대한 프랑스 신문의 인식은?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오늘 날의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1931년의 일본의 만주 침략은 야만적 행동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당시의 프랑스의 한 신문의 시각은 이와 달랐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영국과 미국의 일부 관료들은 일본을 야만에 맞선 아시아의 문명의 수호자로 간주했다. 즉 일본은 혼란과 볼셰비즘에 맞서 아시아에서 서양의 권익과 지역의 질서를 수호하는 국가라는 것이었다.

"문명국 일본은 우리의 전시 동맹국이었고, 동양에서 야만적 무질서에 맞서서 사회 질서와 평화를 고독하게 수호하며, 적어도 당분간은 피를 부르는 볼셰비즘의 파도에 대한 방파제를 제공할 유일한 세력이며, 이는 우리 프랑스인에게 우리의 인도차이나를 위한 무적 요새의 일부이다." 

즉, 일본의 만주사변은 아시아의 반공투쟁의 일부이며,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식민지 방어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었다. 

Le Japon, nation civilisee, notre allie loyal de la guerre, qui seul represente et
defend a !'Orient du monde l'ordre social et la paix contre une sauvage anarchic,
qui, seul, pour le moment, a le pouvoir de barrer la route a la vague sanglante de
bolshevisme, est pour nous Franc;ais un des invincibles ramparts de notre
Indochine. 1

프랑스 신문 르텅, 1931년 11월 21일
Le Temps, 21 November, 1931.


참고-

Christopher Thorne, The Limits of Foreign Policy: The West, the League, and the Far Eastern Crisis of 1931–1933 (London, 1972), 7.

이 프랑스 신문은 10여년 안에 일본 제국이 인도차이나에 대해 강행할 행동을 미처 의심하지 못한 것인가? ㅠㅠ

맹목적 반공주의가 일제의 제국주의 침략을 인식하는데 방해가 된 것인가? 

반공주의는 영혼을 잠식한다?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는?

중국에서의 공산주의 침략을 막는다는 목표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중국 침략만큼,

중국 공산당의 세력 확장을 용이하게 만든 것도 없다는 사실이다. 

중일전쟁이 중국의 공산주의 혁명을 부채질 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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