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처칠이 소련의 중일전쟁 개입에 반대한 이유는?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38년 2월, 네빌 체임벌린 정부에서 앤서니 이든이 외무장관 직에서 사임하자,
소련은 영국이 극동에서도 일본에 대해서 유화정책을 실천하지 않을까 고심했다. 소련의 외무차관 스토모니야코프는 재중 소련대사에게, 영국이 중일전쟁의 조기 종결에 관심을 가지고, 중국에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 였다.

소련의 입장에서 영국의 유화정책을 견제하는 데 희망을 걸 수 있는 인물은 바로 윈스턴 처칠이었다. 주영 소련대사 마이스키는 5월 12일 처칠을 만났다. 

"처칠은 극동에서의 우리 정책을 매우 높이 평가했다. 중립을 유지하지만, 동시에 중국에 무기를 제공하는 것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이것이 최선이라 했다. 만약 소련이 중국 편에서 전쟁에 무력 개입한다면, 세계 도처에서 반소 감정만을 자극할 것이며, 일본의 입장을 유리하게 만들 것이며, 대동맹의 결성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 처칠이 주장했다."고 마이스키 대사가 본국에 보고했다.

38년의 처칠에 따르면, 대동맹 (영국-미국-소련) 은 인류를 구할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참고-

Haslam, J. (1992). The Soviet Union and the Threat from the East, 1933-41 -Moscow, Tokyo, and the Prelude to the Pacific War. New York City, New York, United States of America: Palgrave MacMillan,  108.

중일전쟁 발발 이후 장개석은 기회가 있을 때문에 소련에게, 중일전쟁에 대한 무력 개입을 요구했다.

그 때마다 소련은 처칠의 논리에 따라, 개입하지 못하는 이유를 제시했다.  

소련의 스탈린은 중일전쟁에서 누가 승리하냐의 여부 보다는

일본이 중국과의 전쟁이라는 수렁에서 전력을 소모하는 것을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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