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중일전쟁 중재와 소련의 반응?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중일전쟁에서 트라우트만 중재란, 전쟁 초인 1937년 말-1938년 초 주중 독일대사 오스카 트라우트만이 주도한 중일 양국의 화해를 위한 독일외교의 노력이었다.  독일은 중일전쟁을 원하지 않았다. 독일의 관점에서 전쟁은 소련에만 이익이 되었다. 

트라우트만의 독일이 주도하는 중일전쟁의 중재 사실을 알게된 모스크바는 당황했다. 12월 14일, 소련 정보총국 부국장 세르게이 젠딘 Sergei Gendin 이 스탈린에게 일본에서 활동중인 리하르트 조르게의 첩보를 전달한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 였다. 

조르게의 첩보는, 주일 독일대사관 무관 오이겐 오트 Eugen Ott 로부터 수집한 것이었다. 조르게는 "소련에 대한 일본의 군사행동이 임박했다."고 경고했다. 오트는 일본 육군 참모본부 소식통을 근거로, 일본은 수용가능한 조건에 따른 중국에서의 전쟁의 조기 종결을 원한다고 했다. 이는 일본 육군이 만주에 집결해서 소련을 공격할 수 있기 위해서 였다. 

첩보는 세가지 사항을 암시했다. 첫째, 예측가능한 공격 형태는 블라디보스톡과 연해주에 대한 기습이었다. 둘째, 육군의 소련 공격 계획에 대한 반대가 약화되었다. 셋째, 소련의 대숙청 사태로 인해서, 소련의 군사력에 대한 일본의 평가가 부정적인 것이 되었다. 물론, 조르게는 첩보 보고문에서 스탈린의 대숙청을 명시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당시가 소련을 공격할 절호의 기회라는 생각이 일본 지도부에서 널리 확산되었다는 첩보였다. 심지어, 자유주의적 사상을 가진 사이온지 기모치의 손자가 소련의 국력을 지나치게 폄하하고 있다고 통탄할 정도였다. 조르게는 "가령 소련의 극동군관구 사령관 바실리 블류헤르 Blyukher 의 분리주의 정서를 이용한 공작이 기획 중이며, 따라서 극동을 기습공격한 후 블류헤르와 일본에 유리한 협상을 한다는 계획이 존재한다."고 알렸다. [이른바 일본의 블라디보스톡,연해주 분리 공작?] 


참고- 

Haslam, J. (1992). The Soviet Union and the Threat from the East, 1933-41 -Moscow, Tokyo, and the Prelude to the Pacific War. New York City, New York, United States of America: Palgrave MacMillan, 102. 

이런 맥락에서 볼때,

소련은 독일의 트라우트만의 중일전쟁 중재가 실패로 끝나기를 가장 원한 국가였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블류헤르는 38년 10월에 일본의 간첩 혐의로 체포, 11월 9일 처형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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