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년]중일전쟁 발발에 소련이 환호한 이유는?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중일전쟁 발발과 소련,독일의 반응?

1937년은 스탈린의 대숙청의 여파로 소련의 붉은 군대가 취약했다. 따라서 소련은 자신에 대한 일본의 전쟁 도발을 두려워했다.

7월 7일 노구교(마르코 폴로 다리) 사건으로 중일전쟁이 시작된 것은 바로 이 같은 상황에서 였다. 물론 이 사건이 중일 양국의 전면전으로 비화될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이 중국과의 전면전에 휘말릴 수도 있다는 전망이 대두하자, 모스크바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실제로, 일본과 8개월 전인 1936년 11월에 방공협정을 체결한 독일은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일본에게 분노를 드러냈다. 독일 외무장관 폰 노이라트 von Neurath 는 베를린의 일본 대사에게, 일본 정부는 현 상황에서의 중국과의 무력 충돌이 소련에게만 이익이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고 항의했다.  독일 외상은 현재 소련 정부는 일본을 정신없게 만드는데 관심이 있으며, 일본이 붉은 군대의 약화로부터 이익을 보기위해 머리를 굴리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스탈린의 대숙청의 여파로 약화된 붉은 군대의 무력을 일본이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소련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이 중국과 전면전을 벌이는 것은 소련의 근심을 덜어주는 이적 행동이라는 것이었다. 


참고-

Haslam, J. (1992). The Soviet Union and the Threat from the East, 1933-41 -Moscow, Tokyo, and the Prelude to the Pacific War. New York City, New York, United States of America: Palgrave MacMillan,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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