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루스벨트의 유럽 주재 대사들과 유화정책?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38년 봄,가을 동안, 독일과 체코슬로바키아 간의 위기에 유럽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해외의 미국 외교관들이 가장 우려한 것은 영국과 프랑스가 히틀러의 요구에 반대해서,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즉 미국이 두려워 한 것은  히틀러의 도발 자체라기 보다는, 도발에 대한 영국과 프랑스의 과잉 대응이었다. 

독일 주재 미국 대사 윌슨은 독일의 열망에 동정적이었고, 저항하고자 하는 체코슬로바키아의 "호사스러운 충동"에 대해서 제한된 동경심을 표명했지만, 만약 그것이 평화를 위협한다고 할 때, 과연 그것이 지혜로운 것인지 의문시했다.  윌슨은 영국대사 네빌 핸더슨에게, 체코인들은 프랑스와 소련 그리고 영국의 원조에 의존하고 있고, 따라서 협상을 기다리기 보다는 독일과의 충돌을 벌일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주재 미국 대사 윌리엄 불릿은 3년 동안의 모스크바 체류 덕분에 소련을 강하게 비판하게 되었는데, 그는 소련의 의도를 좌절시키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프랑스와 독일의 화해를 장려하는 것이라 주장했다. 5월, 불릿 대사가 프랑스 총리에게, 만약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공격한다면, 프랑스가 맞서 싸울 것인지 묻자, 에두아르 달라디에 총리가 "누구랑 싸운다구요?"라고 반문하자, 대사는 비로서 안심했다.

영국 주재 미국 대사 케네디 (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는 전쟁을 막기 위해서란 어떠한 값이라도 치러야 하며, 만약 발발한다고 하더라도 미국은 빠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독일에게 남동 유럽을 통제하게 허락된다면, 경제발전이 독일을 정치적으로 마비시키거나 혹은 평정시킬 것이라 그가 주장했다.  케네디는 독일의 경제 팽창을 선호했고, 영국-독일 우호를 지지했고, 그는 심지어 공개적으로 "나는 체코인들을 위해서 전쟁에 개입하기를 원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발언하기까지 했다.  케네디의 9월 연설에 대해서 워싱턴의 국무부는 충격을 받았다.  루스벨트는 모겐소 장관에게, "그에게 강력한 경고가 필요하다."고 말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유럽에서 나치의 도발에 대한 미국정부의 태도는 좋게 보자면 모호했고, 나쁘게 보자면 잘못된 유화였다.


참고-

Arnold A. Offner, America and the Origins of World War II, 1933-1941:New Perspectives in History.Houghton Mifflin, Boston.1971. 54-55.





덧글

  • 잘생긴 젠투펭귄 2018/10/08 09:25 # 답글

    ㅇㅎ...
  • 잘생긴 젠투펭귄 2018/10/08 13:12 # 답글

    체코 침공 시나리오에 의한 대전 발발 이후의 상황을 우려하는 의견도 있었던걸로 기억나네요. 구심점을 잃어버린 독일이 이후에 공산화 가능성이 높다면서 러시아와 결합 이는 큰 위협이 된다고 하면서요.
  • 파리13구 2018/10/08 13:23 #

    유화의 논리에는,
    영국과 독일이 손을 잡고, 공산주의의 동진을 막는다는 구상도 가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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