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년] 장개석의 비극적 아이러니는?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1945년 8월, 8년간의 항일전쟁 끝에 장개석은 결국 승리를 눈앞에 두었다. 하지만 그는 기쁜 기분이 전혀 아니었다.

중일전쟁은 그에게 역설이었다. 8년 전에,상하이,난징에서 유혈 전투가 발생했을 때, 장개석은 고난 속에서도, 중국을 지킬 수 있다는 확신과 강력한 일본이라는 적에 맞서 장기적인 지연전을 벌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45년의 장개석의 우울은 지난 8년 동안 중국공산당이 그 세력을 획기적으로 늘렸다는 점에 있었다. 공산당의 홍군은 150만 병력을 보유했고, 특히 앞으로 스탈린이 모택동을 지원할 것이 분명했다.

중국에서 소련의 등에 올라탄 모택동의 공산세력이 강력한 가운데, 그의 지원세력이 되어야 마땅한 영국과 미국은 얄타와 포츠담에서, 중국에서의 소련의 권익을 인정하고,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는 양보를 제시하면서, 장개석에게 굴욕을 선사했다.

45년 8월, 장개석의 우울은 이 때문이었다. 


참고-

Taylor, J. (2015). China's long war with Japan. In J. Ferris & E. Mawdsley (Eds.), The Cambridge History of the Second World War (The Cambridge History of the Second World War, pp. 51-77).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74-75. 


-45년 이후의 장개석의 수난에 대한 국내적 설명 뿐만 아니라,

국제정치적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영국의 분탕질에 대해서 말이다. 

영국의 입장에서 보면, 장개석의 중국이 강해질 수록, 전후 극동에서의 대영제국의 권익 부활의 가능성은 낮아질 수 있었다.

전후 극동에서의 제국의 권익 보호를 위해서 영국은 장개석의 중국을 어떻게 견제한 것인가? 



덧글

  • 2018/10/04 12:41 # 삭제 답글

    영국은 장을 견제하다 모에 의해 통일된 중국을..
  • 파리13구 2018/10/04 12:46 #

    모택동은 영국에게, 공산당은 홍콩 같은 작은 땅에 관심없다고 했습니다.

    대륙을 먹을 판국에 말입니다. ^^
  • 2018/10/04 14:04 # 삭제

    그러면 장의 홍콩정책은 반환해라 이거였나요?

    그러고보니 저 시기는 역시 외교정책도 중요하군요
  • 파리13구 2018/10/04 14:12 #

    미국도 처음에는 홍콩 반환에 긍정적이었습니다.
  • 잘생긴 젠투펭귄 2018/10/06 07:21 # 답글

    영국의 제국유지를 위한 분탕질은 수에즈 위기까지..ㅋㅋ
  • 전위대 2018/10/08 15:54 # 답글

    "많은 사람들은 오늘을 승리와 영광의 날로 여긴다. 하지만 나는 홀로 커다란 슬픔과 부끄러움을 느낀다."
    -1945년 8월 15일의 장개석의 일기.

    장개석 말고도 대계도나 진포뢰를 비롯한 장개석의 측근들은 하나같이 더욱 타개하기 어려울 미래의 어둠에 대해서 염려했었죠.
  • 파리13구 2018/10/08 16:12 #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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