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일전쟁기 미국의 극동정책의 핵심은?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이 주제에 대한 기념비적 연구는 도로시 보르그의 연구이며, 이후 모든 관련 연구의 출발점이 되어왔다. 말하자면, 보르그 이후의 관련 연구에서 그녀의 책이 인용되지 않았다면, 그 연구는 무시해도 무방할 정도라는 것이다. 성경에 가깝다.

보르그, 미국과 1933-1938년의 극동정책 ; 만주사변부터 선전포고없는 중일전쟁 초까지,1964.
Dorothy Borg, The United States and the Far Eastern Crisis of 1933–1938: From the Manchurian Incident through the Initial Stage of the Undeclared Sino- Japanese War (Cambridge, MA: Harvard University Press, 1964).

이른바 보르그 테제란 다음과 같다.

1933년-1938년 동안 루스벨트의 극동정책의 목표는 유화와 저항의 균형을 통해서 일본과의 전쟁을 막는 것이었다.전쟁에 대한 공포 때문에 미국은 일본을 화나게 만드는 중국에 대한 적절한 지원을 하지 못했고, 루스벨트 정부는 일본의 행동을 온건한 어조로 비판하는데 그쳤다. 

Ashbaugh, W. (2011) Relations with Japan, in A Companion to Franklin D. Roosevelt (ed W. D. Pederson), Wiley-Blackwell, Oxford, UK, 613.

그렇다면, 38년 이후 미국의 대일본 정책이 강경화된 배경에는 유럽 정세의 악화와 관련있는 것으로 본다. 폴 슈뢰더에 따르면, 미국의 극동정책을 움직인 것은 유럽에 대한 고려였지, 극동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 아니었다. 

Schroeder, The Axis Alliance and Japanese-American Relations, 14-22.

특히, 일본의 치명적인 선택은 방공협정과 삼국동맹으로, 극동의 깡패국가 일본이 나치 독일과 손을 잡은 것이었다. 이것이 미국을 화나게 만들었다. 




덧글

  • 2018/10/04 12:14 # 삭제 답글

    그럼 저 테제는 나치랑 손 안 잡았으먼 온건 유화책이라는 얘기네요?
    ?? 그럼 장개석의 대전략에 문제가 생기는거 아닌가요?
  • 파리13구 2018/10/04 12:20 #

    일본이 나치와 동맹을 않했으면, 미일화해 가능성이 올라가고,

    미국이 중국에서의 일본의 권익을 인정하는 미일화해에 동의했다면,

    장개석은 나치와 손을 잡았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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