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중일전쟁에 대한 장개석의 기본 전략은 일본군을 무력으로 제압하기 보다는 거대한 중국이란 전장의 수렁으로 유인하는 것이었다.
1938년 10월, 우한이 함락되자, 장개석은 고급 지휘관들에게, 자신의 초기 전략, 즉 공격적 방어가 잘 마무리된 것이라 평가했다. 그의 전략은 일본에게 큰 비용이 들게 유도하는 것이었다.
일본과의 전쟁의 다음 단계로, 장개석은 모든 것의 속도를 늦추며, 전쟁을 장기적 소모전으로 만들며, 마지막에 전쟁을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것이 될 것이라 전망했다. 중일전쟁은 실제로 장개석이 초기에 구상한대로 진행되었다.
주요 도시와 지역에 대한 거점 방어가 중국의 주요 전략이었고, 가능한 곳에서 매복,반격,측면 공격이 진행되었다. 측면 공격의 경우는 대부분이 큰 인적 희생이 따르는 인해전술 공격이었다.
양 측의 화력 차이를 강조한 장개석은 일본과의 대규모 교전을 위해서, 중국은 적국 일본의 군대 보다 현상적으로 6 -9배 많아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즉 일본군 보다 중국군이 6-9배 많을 경우에만 대규모 교전을 치른다는 방침이었다.
이는 19세기 영국군에 맞선 줄루 족의 전술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출처-
Taylor, J. (2015). China's long war with Japan. In J. Ferris & E. Mawdsley (Eds.), The Cambridge History of the Second World War (The Cambridge History of the Second World War, pp. 51-77).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57.
덧글
결국은 다 졌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