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체임벌린의 유화정책은 아시아에 적용되지 않았다.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아키라 이리에에 따르면,

1938년 내내 미국과 영국은 독일에 대한 유화정책을 실시했고, 그 결과 뮌헨협정이 체결되었다. 그럼에도 유화는 유럽에만 한정되었고, 아시아에 적용되지 않았다.

영국도 미국도 일본에 대해 유화정책을 실시하기를 원하지 않았다. 극동에서 일본은 노골적으로 공격적이었다.

네빌 체임벌린과 더불어 유럽에서 대-독일 유화정책을 주도한 핼리팩스 영국 외무장관은 1938년 5월에 이렇게 말했다.

"중국은 법을 지키는 모든 나라들을 위해 싸우고 있다. 중국은 우발적으로 극동에서 자신의 전투를 치르고 있는데, 만약 일본이 승리한다면, 그곳에서의 우리의 권익은 확실히 끝장날 것이다."

헬리펙스의 발언은 영국의 극동정책이 유화의 언어가 아님을 보여주었다.

비록 영국이 일본과의 전쟁을 피하고 싶었지만, 그들은 체코슬로바키아 보다는 중국을 보다 돕고자 했다. 

이와 유사하게, 미국도 뮌헨에 박수를 보냈지만, 아시아에서 유화가 아닌 자신이 추구하는 정책을 추구했다. 미국이 1938년 가을에 중국에 차관을 제공하기로 결정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에서 였다. 

11월 3일, 일본 총리 고노에 후미마로가 대동아 공영권 건설을 발표하자, 워싱턴과 런던은 즉시 이를 비난했다.


-참고

Iriye, A. (1986). Japanese aggression and China's international position 1931–1949. In J. Fairbank & A. Feuerwerker (Eds.), The Cambridge History of China (The Cambridge History of China, pp. 492-546).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524.

- 유럽에서 체임벌린의 독일 유화정책의 전제는 베르사유 체제에 대한 독일의 불만에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극동에서 영국은 워싱턴 체제에 대한 일본의 파괴행동에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과 더불어 영국은 20년대 워싱턴 체제의 조약의 의무가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태평양전쟁은 두 개의 국제법 원칙의 충돌이었다 볼 수 있다. 즉 영미가 주장하는 신의성실의 원칙,즉 약속을 지켜야한다는 것과 일본의 사정변경의 원칙의 충돌이었다. 

그 결과, 극동에서 일본의 수정주의가 영미의 현상유지 정책과 충돌하면서, 태평양 전쟁을 위한 대결구도가 형성 되었다.



덧글

  • 잘생긴 젠투펭귄 2018/10/02 10:01 # 답글

    이미 31년도에 만주사변으로 틀어질만큼 틀어졌다봅니다.
  • 파리13구 2018/10/01 20:08 #

    31년 만주사변 당시에

    만약 일본이 현명하게 대처했다면,

    타협의 여지는 존재했습니다.

    31-37년 동안 영국은 유화적 성향이 강했고,

    미국도 극동에 대한 개입을 주저했습니다.
  • 2018/10/02 15:46 # 삭제

    당시 31-37년 어떤 이유로 유화책이 대세였나요?
    역시 1차대전의 영향? 37년 중일전쟁으로 판세가 바뀐거죠?

    뒤의 것과 연이어보니 일본은 외교전 연전연패던데 군부가 폭주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외교부는 뭐하고 있었나요?
  • 파리13구 2018/10/02 19:30 #

    대공황으로 국내 문제 때문에 정신이 없었습니다.
  • 잘생긴 젠투펭귄 2018/10/02 19:33 #

    대공항 이후 민간,군부의 정치적 대결로 군부 강경파가 이겼다? 라고 봐도 되는 건가요?
  • 파리13구 2018/10/02 19:37 #

    대공황과 독일,일본의 파시즘 대두는 관련이 있습니다.
  • 2018/10/01 20:2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8/10/01 20:2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10/01 20:32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10/01 20:35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10/01 20:37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10/01 20:44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10/01 20:46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2018/10/01 20:50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 wolf 2018/10/02 22:57 # 삭제 답글

    영국의 정책이 이이제이 아니었을 까요
    영국입장에서는 일본의 부상도 싫지만, 중국의 국민당이 중국을 장악하고 재부상하는 것도 기피했습니다
    심지어 일본의 버마침공때도 영국군은 국민당군이 투입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따라서 국민당과 일본이 충돌하는 것이 영국의 이익에 부합했기 때문에 국민당과 일본이 충돌하도록
    국민당을 지지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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