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중일전쟁에서 왕자오밍(왕징웨이,왕조명)은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 일본과 타협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매국노가 되었다.
왕자오밍 부인은 남편이 매국노로 비판을 받자, 이렇게 항변했다.
"장제스는 미국,영국을 선택했고, 모택동은 소련을 선택했다. 그리고 내 남편 왕자오밍은 일본을 선택했다. 거기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출처-
가토 요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전쟁을 선택했다 – 청일전쟁부터 태평양전쟁까지, 서해문집,2018. 354.
- 반제국주의가 중국 근대사의 시대적 과제였다고 한다면,
중일전쟁의 시대가 되면, 중국의 주요 지도자들은 외세와 손을 잡아서, 외환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이 전통적 반제국주의의 과제를 버리고, 외세와의 결탁을 주장했음에도,
왜 왕징웨이만 매국노가 된 것인가?
이를 위해 1931년 만주사변 발발 이후, 중국사에서의 반제국주의의 과제가 변했음을 알아야 한다.
일본이 중국이 당면한 외환의 핵심으로 부상하면서, 중국의 과제는 모든 외세 열강에 대해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물리치기 위해서, 다른 외세와 연대한다면, 반일 이이제이를 만드는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만약 1931년 만주사변 이전이라면, 왕자오밍 부인의 변명이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31년 이후는 무의미한 변명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1931년 이후 중국 반제국주의는 반일주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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