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속의 갈등-장개석과 스탈린?"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36년 방공협정부터 39년의 독소불가침조약 이전까지 중국과 소련의 관계는 친밀한 동맹관계였다. 

하지만, 동맹관계 중에서도, 그들은 서로를 믿지 못했다. 두 사람의 이데올로기 차이도 작용한 듯 보인다. 

장개석이 스탈린의 지원을 가능한 많이 받기를 원했고, 스탈린의 중일전쟁 참전까지 원했다면, 스탈린이 원한 것은 극동에서 일본과 싸우는 중국이었다. 스탈린은 일본을 중국이라는 수렁으로 몰고 싶었고, 소련을 공격할 여유를 가지지 못하게 만드는 장기적 소모전으로 몰아갔다.

장개석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도쿄와의 평화 협상이라는 카드를 이용했다. 중일 평화교섭과 소련의 중국 원조는 관련이 있었다. 평화교섭은 모스크바를 압박하는 카드였고, 이에 대해서 소련은 중국의 굴복을 막고, 중국이 계속 싸우게 만들기 위해서 원조를 늘릴 수 밖에 없었다. 

뿐만 아니라, 장개석에 대한 소련의 원조 증가는 도쿄가 중국을 소련과의 동맹으로 이간질 시키기 위해서 평화조건을 완화시킬 수 있는 동기가 되고, 원조 때문에 소련에 화가난 일본이 스탈린의 나라를 공격하게 만들 수 있었다. 1938년 1월 5일 장개석에게 보낸 전문에서 양지에는 소련에게 보여주기 위한 일본과의 비밀 평화교섭이 일본이 소련을 공격하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장개석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었다. (비밀 협상을 통해서 장개석은 소련 원조의 증가 혹은 일본의 소련 공격이라는 유리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따라서 38년의 평화를 위한 장개석의 비밀 외교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스탈린은 38년의 중일 비밀 협상을 알았고, 장개석도 스탈린이 그것을 알고 있다는 점을 알았다. 중국내 소련 첩보망은 촘촘했고, 중국과 일본 신문들이 비밀 회담 소식을 보도했기 때문에, 우리는 장개석과 스탈린이라는 국제정치의 두 거장이 비밀아닌 비밀을 통한 신경전을 벌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이 실강이 속에서 장개석이 스탈린에게 보낸 신호는 다음과 같았다 : 우리는 소련을 위해서 일본과 싸울 것이지만, 우리의 힘에 한계가 있다. 만약 우리가 항복한다면, 당신네 안보에 치명타가 될 것이다. 만약 우리를 계속 싸우게 하려면, 당신들은 우리에 대한 원조를 늘리거나, 일본과의 전쟁에 참전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장개석의 비밀 평화 협상과 소련 원조 증가에 대한 요구는 동전의 양면이었다. 

장개석의 사절들이 일본과 평화 협상을 벌인 동안, 동시에 다른 사절들은 소련의 원조 증가를 요구하는 활동을 벌였다는 것이다. 


참고-

John W. Garver, Chinese-Soviet Relations, 1937-1945: The Diplomacy of Chinese Nationalism, Oxford University Press; 1 edition (September 8, 1988), 31.

반대로, 스탈린은 소련의 전쟁 개입이라는 카드를 만지작 거리면서, 일본에 대한 중국의 완전 굴복을 막으면서도, 결국 끝까지 개입하지 않으면서, 중국을 일본과 계속 싸우게 만드는 정책을 유지했다.  “지금은 곤란하다. 기다려달라”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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