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봉 사건,노몬한 전투 그리고 장개석?" Le monde

[36년] 서안 사변의 장개석과 스탈린?

소련-일본의 국경분쟁에 대한 장개석의 태도는 어떤 것이었나?

1936년 11월 독일과 일본의 방공협정 체결부터  1939년 8월의 독소불가침조약까지,장개석의 항일 활동의 최대 후원세력은 영국,미국이 아니라, 스탈린의 소련이었다. 심지어 장개석은 소련의 군사원조를 넘어서, 소련의 중일전쟁 개입을 희망했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1938년 7월의 장고봉 사건과  1939년의 노몬한 전투는 소련과 일본이 극동에서 충돌한 것으로, 장개석의 숙원의 실현이라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두 사건에 대한 장개석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나? 장개석은 침묵을 지켰다. 

1938년 7월, 소련과 일본이 만주국,한국,소련의 국경이 만나는 장고봉 고지에서 충돌했다. 10일 동안, 소련 군대는 기갑 전력을 포함한 2만 병력이 7천 명의 일본 수비군을 패배로 몰았다. 전투 이후의 평화조약에서 승리한 소련에게 패배한 일본은 큰 면적의 토지를 소련에 양도했다. 중국은 만주국에 대한 주권을 포기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장개석은 승리에 기쁘지 않았고, 냉소적 침묵을 지켰다. 반면, 중국 공산당은 소련의 승리를 축하했고, 일본을 비난했다.

1년 후에, 더 큰 영토 분쟁인 노몬한 전투에서, 스탈린은 장개석의 지원 부족에 격노했다. 중국 정부가 자국 영토라 주장하는 외몽골의 노몬한에서 1939년 5월에, 소련과 일본이 충돌했다. 9월초 까지 계속된 전투에서 붉은 군대가 일본에게 승리했다.

노몬한에서의 승리를 통해서 일본으로부터 소련은 중국 접경의 흑룡강 성의 2천 평방 킬로미터의 땅을 넘겨받았다. 스탈린은 장개석으로부터 노몬한에서의 소련의 행동과 그 결과의 중국 영토를 소련이 획득한 것을 지지받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장개석은 신경질적인 침묵을 지켰다. 

장고봉 사건과 노몬한 전투는 중국에 대한 소련의 군사 지원이 초고조에 도달했을 때 발생했다. 두 사건에 대해서 장개석이 스탈린에게 적절한 외교적,군사적 지원을 하지 않은 것이 중국과 소련의 관계에 찬물을 부었다.


참고-

Maochun Yu, "The Russians are coming-The soviet union's military aid to china", in The Dragon's War: Allied Operations and the Fate of China, 1937-1947 

장고봉과 노몬한에서 실망한 스탈린이 결국 독소불가침 조약으로 장개석의 뒤통수를 때린 것인가? ㅠㅠ

장고봉과 노몬한이 장개석을 불쾌하게 만든 것은 무엇 때문인가?



덧글

  • 무지개빛 미카 2018/09/10 11:48 # 답글

    소련 "공산당"이기 때문이죠. "공산당"의 힘이 강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본 장개석의 생각에는 이 소련 "공산당"이 모택동의 공산당을 지원할 경우 그 힘이 누구에게 다가올 것인지를 계산한 겁니다.

    문제는 훗날 소련과 중공의 공산주의에 대한 노선갈등을 빚다가 결국 갈라선다는 사실을 장개석은 몰랐다는 것이겠죠.
  • 파리13구 2018/09/10 11:55 #

    소련이 공산당이 아니었다면, 장개석은 다르게 행동했을까요? 가령 제정 러시아...
  • 무지개빛 미카 2018/09/10 12:52 #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공산당이 아닌 러시아니 소련이었다면 장개석은 진심으로 축전이라도 써서 모스크바에 보냈겠죠. 미국처럼 장개석을 잘 지원하면 쓸만한 동맹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들 정도로 노력했을 껍니다.
  • 파리13구 2018/09/10 13:37 #

    님아, 러시아와 소련이 만주에 대해 다른 생각을 ?

    ???
  • 파리13구 2018/09/10 16:53 #

    님,

    공산당 소련과 제정 러시아는 같은 위협입니까? ^^
  • 무지개빛 미카 2018/09/10 17:01 #

    아.대답이 늦었군요.

    사실 제정 러시아든 구 소련련방이든 만주에 대한 생각은 거의 다를것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제정 러시아가 부동항 구하기에 혈안이 되었다는 사실에는 어딜가든 변함이 없었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다만 장개석에게는 그게 "공산당"이냐, 아니냐가 더 중요했다고 그게 더 우선순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공산당이란 것이 모든것을 정하는 기준이 되어버린 장개석이 어찌보면 대단히 시아가 좁다고 느껴집니다.

    본문대로라면 독소불가침 조약 전까지 줄기차게 중일전쟁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해서 대일본제국군 좀 죽여달라고 무려 스탈린에게 요구하는 바보짓을 했다니 말입니다.
  • 파리13구 2018/09/10 17:20 #

    님아,

    장개석에게 스탈린이 소련인가, 러시아인가 중에

    어떤 것이 중요했다는 겁니까?

    전자, 후자?
  • 무지개빛 미카 2018/09/10 18:15 #

    그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스탈린이 단순한 러시아의 독제자 또는 왕권을 주장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면 장개석의 생각은 적어도 중국 공산당에 대한 생각이 스탈린에게 어떤식으로든 영향을 주지 못했을 것이라고 여깁니다.

    문제는 그 당시 소련련방이 공산주의와 공산당 일당체재였고 특히 스탈린이 행한 대숙청을 통한 붉은 군대의 유능한 장교 및 장군들에 대한 대대적인 숙청소식을 모를 리 없었다고 생각하며 이를 통해 만약 붉은 군대가 대일본제국 육군과 싸울 경우 이들이 대패하거나 또는 전선이 교착상태 또는 밀리는 상황이 올 것이라 생각했을 것이고 이 때 장개석의 국민당군이 나서서 이 싸움을 진정시키거나 어느 쪽의 손을 들어주는 행동을 통해 유리한 입지를 마련하고 싶었다는 뜻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러나 2번의 전투 특히 할힌골 전투를 통해 보여준 붉은 군대의 실력은 장개석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고 여겨집니다. 왜냐하면 이 할힌골 전투가 어찌보면 그토록 장개석이 원하던 중일전쟁에 소련이 본격 개입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테니까요.

    하나 장개석은 끝까지 앞과 뒤의 전투, 즉 중국 공산당. 마오쩌둥과의 전투와 동시에 벌어지는 대일본제국군과의 전투를 생각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이렇게 되면 공산당이나 아니냐가 장개석에게는 어떤식으로는 영향을 끼첬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장개석이 아무리 멍청해도 설마 스탈린의 대숙청 소식을 모를리 없겠죠? 더불에 겨울전쟁 이야기도 말죠? 장개석은 아내한테 그 이야기를 들으면 되니까요. 아니면 세놀트 플라잉 타이거즈 사령관 불러다 이야기 들어볼 수도 잇껫죠?!?!?"
  • 파리13구 2018/09/10 18:35 #

    님아, 말을 돌리지 마시고,

    전자인지 후자인지 분명히 하시구요,

    그 근거가 뭔지

    문헌 증거를 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 무지개빛 미카 2018/09/10 17:58 # 답글

    거기에 장개석+대숙청 이야기가 나왔으니 한 사람 더 얹어봅시다.

    바실리 블류헤르 원수라고 말입니다. 어디선가 하산 호 전투에 대한 것을 이리저리 보던도중 알게되어 이거저거 보았는데 이 사람이 장개석하고는 매우 친했다고 하더군요.그리고 대숙청 당시 죽었다는 것도요.
  • wolf 2018/09/10 21:27 # 삭제 답글

    추측이지만 장개석의 민족주의 성향을 볼때, 당시에 장개석은 이미 만주국을 일본으로 부터 되찾아야 할 땅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당시 소련의 승리라는 건 만주국의 잠재적 영토가 소련이나 몽골에 넘어간다는 의미니 장개석의
    성향으로 보았을때 환영할 만한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소련의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그 대가로 영토를 주거나, 소련군이 중국에 주둔하는 걸 보
    고 싶지는 않았을 겁니다
    또한 중국 영토 여기저기가 강대국의 조차지가 된 상황은 중국의 민족주의자들에게 수치였고,
    반대로 일본 뿐만 아니라 영국이나 미국도 중국이 강대국으로 부활하는 걸 반기지 않았죠
    그 때문에 국민당군의 1차 북벌당시에 국민당군과 외국군의 충돌이 있었으니, 장제스도 사실
    사정만 허락된다면 일본 뿐만 아니라 영국이나 미국도 조차지에서 몰아내고 싶었던 시기니
    소련이라 해도 원조이상의 역할을 하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을 겁니다
  • 파리13구 2018/09/10 21:32 #

    감사합니다.

    원조가 주권을 침해하면 안 된다는 원칙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국주의의 특혜 철폐는 1920년대부터의 장개석의 숙원이었습니다.
댓글 입력 영역
* 비로그인 덧글의 IP 전체보기를 설정한 이글루입니다.


2014 대표이글루


2016 대표이글루

2015 대표이글루

2013 대표이글루

2011 이글루스 TOP 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0 이글루스 TOP100

2017 대표이글루_history

방문자

광고